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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cob's second brain 탐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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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한 번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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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 친 문장들

엄마가 너무나 자신있게 한 말이 그렇게 많이 틀렸다는 것에 아내는 놀라곤 했다. 그러면서도 아내가 엄마의 말에 매번 다시 귀를 기울이게 된 것은 그 ‘앎’의 정확성에 대한 믿음 떄문이 아니라 세상이 부모에게 부여한 앎의 권력(자식의 ‘명목상으’ 저자라는 권위) 때문이었다. 다시 말해 엄마는 자식을 정말로 잘 알았던 것이 아니라 ‘자식을 잘 안다고 말할 수 있는 권력’, 즉 다른 사람이 귀를 기울이게 만들 힘을 가지고 있었을 뿐이다. 95p

영화 <아바타>에서 나비족의 인사는 “I see you”, ‘나는 당신을 봅니다’이다. 그 단순한 인사는 마음에 오래 남았다. “너 그렇게 안 봤는데…”라는 말의 뜻은 ‘너를 그런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았는데…’이다 보는 것은 생각하는 것이다. “앞으로 어떻게 걔 얼굴을 보겠냐?” 라는 말은 이제 걔와의 관계를 지속하기 어려워 졌다’는 뜻이다. 보는 것은 관계를 지속하는 것이다. “널 당장 보고 싶어”라는 말은 사진을 보내달라는 뜻이 아니다. 보는 것은 같은 시공간에 함께 있는 것이다. 만나서 의미 있는 시간을 갖는 것이다. “나는 그 일을 그렇게 보지 않아”라는 말은 나는 그 일을 그렇게 이해하지 않아” 라는 뜻이다. 보는 것은 이해나느 것이다. 세상에는 나를 대신해서 나를 보아주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나의 어떤 면을 문자 그대로 보고, 생각하고, 이해한다. 그리고 관계를 지속한다. 98p

너 그렇게 안 봤는데 라는 말의 뜻은 너를 그런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았는데… 보는 것은 생각하는 것이다. 보는 것은 관계를 지속하는 것이다. 나는 그 일을 그렇게 보지 않아 라는 말은 나는 그 일을 그렇게 이해하지 않아 라는 뜻이다. 보는 것은 이해하는 것이다. 세상에는 나를 대신해서 나를 보아주는 사람들이 있다.

내가 누구이며, 어떤사람일까를 알기 위해 애썻던 십대의 내가 거기 있다. 그러나 돌아보면, 나라는 존재가 저지른 일, 풍기는 냄새, 보이는 모습은 타인을 통해서만 비로소 제대로 알 수 있었다. 천 개의 강에 비치는 천 개의 달처럼, 나라고 하는 것은 수많은 타인의 마음에 비친 감각들의 총 합이었고, 스스로에 대해 안다고 믿었던 많은 것들은 말 그대로 믿음에 불과했다. 102p

트레드밀이 난폭한 수감자들을 통제하는 데 효과적이라고 평가한 기록이 있다. … 단순히 교도소라는 환경 떄문에 트레드밀이 고문 기구가 된 것은 아니었다. 의미를 찾을 수 없는 고된 노역, 스스로 멈출 수 없다는 데서 오는 공포가 수감자들을 압도한 것이다. 운동기구가 된 트레드밀 역시 인간에게 고통을 부과하지만 그것은 인간이 스스로 선택한 것으로, 어떤 강도로 얼마나 오래 지속할지를 직접 결정할 수 있고, 언제든지 중간에 내려올 수 있다. 이렇게 스스로 부과하는 고통은 성장과 변화의 동력이 된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든, 백두대간 종주를 하든, 매일같이 크로스핏 운동을 하든 끝이 있고 잘 통제되기만 한다면 더 강한 존재로 변화한다는 것을 우리는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다. 107p

불교에서 말하는 생로병사의 네 가지 괴로움에 생고, 즉 태어남이 고통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 어릴때부터 의문이었다. 태어나는 것 자체는 좋은 것 아닌가? 늙고 병들고 죽는 것이야 괴롭겠지만, 그러나 싯다르타는 태어나는 것 자체가 고통이라고 보았던 것 같다. 기억을 하지 못할 뿐 111p

미국의 통증 전문가 데이비드 B 모리스의 이 흥미로운 발언을 가져온다. “오늘날의 미국인들은 아마도 고통 없는 삶을 일종의 헌법으로 보장된 권리처럼 생각하는 지구상 첫 번째 세대에 속할 것이다. 고통은 스캔들이다.” 오늘날 고통 경험의 주요한 특징 중 하나는 고통이 무의미한 것으로 지각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고통은 무의미하지 않다. 모든 진실을 고통스럽고 고통은 결속이자 자아의 윤곽을 드러내며 고통은 현실이다. 이 현실의 반대편에는 좋아요의 세계가 있다. 또한 고통이 사라진 만족의 문화에는 카타르시스의 가능성이 빠져있다. 문제는 아무리 고통을 회피하려 해도 고통은 반드시 귀환한다는 것이다. 수만은 양물과 긍정심리학의 도움에도 불구하고 만성통증은 늘어나고 있고, 아이들은 자해하며 정신적 고통은 극심해졌다. 한병철은 “만성적 고통이 견딜 수 없게 된 것은 무엇보다도 오늘날의 사회가 의미를 상실했기 떄문이다.” 만상적 고통은 의미를 상실한 우리 사회를, 우리의 이야기를 잃어버린 시대를 반영한다. 고 진단한다. 이야기가 있기는 있다. 그러나 그 이야기 속에서 고통이 사라졌다는 뜻이다. 114p

눈이 지금보다는 훨씬 밝았던 이십대의 밤들에 나는 침대에 누워 책을 더 보고 있었어야 했다. 15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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