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각
이번 주도 바빴지만 읽고 싶었던 책을 읽었다. 주로 대중교통을 이용하거나 미용실 같은 곳에서 대기할 때 핸드폰을 가방 깊숙한 곳에 집어넣고 손에 책 한 권만 들고 있는 것으로 강제 독서 환경을 만들었다. 아직 완독은 못했지만 자투리 시간은 잘 활용한 것 같다.
읽은 책은 ‘아비투스’로, 삶을 대하는 태도와 아우라 등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이다. 이 책이 흥미로웠던 이유는 내가 오랜 시간 사회에서 뼈저리게 경험한 것들을 정리된 문장으로 풀어주었기 때문이다.
이 개념의 핵심은 아비투스가 사회문화적 자본으로 인해 결정된다는 점이다. 흔히 ‘자본’을 논하면 ‘돈’을 떠올리지만, 역설적으로 이 책에서 말하는 상류층의 아비투스는 ‘돈’과 직결되지 않는다. 내용이 어쨌든 자본의 상하관계를 논하기도 한다. 다 같이 어울려 살아가는 사회에서 위아래를 논하는 건 불쾌한 일이고, 나도 그런 관점만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내가 입에 담지 않는다 해도, 세상이 돌아가는 방식에는 자본이 반드시 관여한다.
내가 삶을 살아가면서 겪는 갖가지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은 엔지니어의 접근 방식과 비슷하다. 모든 문제 해결의 첫 번째 단계는 문제의 본질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그 정체를 명확하게 정의하는 것이다. 그 문제를 바라보기 거북하다고 내 입맛에 맞게 필터링하거나 못 본 척하면 마음은 편할지 모르겠으나,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아직 절반밖에 못 읽었지만 밑줄 친 문장이 많아서, 아래에 정리하고 간단한 코멘트를 남기는 것으로 회고를 대체한다.
심리 자본
어려움을 극복하는 법은 어렸을 때 배우는 게 가장 좋다. 안정적인 가정의 자녀들은 양육 과정에서부터 유리하다. 친구들과 종종 다툼이 있고 학교 성적이 완벽하지 않더라도, 직접 경험하고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보는 기회를 얻는다. 리스크를 두려워할 필요 없다. 쏘지 않으면 명중률은 0%다. — 51p
일을 할 때도 같다. 저년차에 문제 해결 경험을 하는 것이 훨씬 좋다. 나는 주니어들에게 이슈 해결을 맡길 때 솔루션을 명확하게 제시해주지 않는다. 다루는 문제의 중요도가 상대적으로 낮기 때문에, 적은 리스크로 앞으로 큰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경험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칭찬에는 교묘한 암시가 숨어 있다. 칭찬하는 사람은 칭찬하는 대상과 자신을 같은 수준에 둔다. 폴리에스테르 스카프를 맨 사람이 부자 친구의 캐시미어 원단을 칭찬하는 건 살짝 기이해 보인다. 그러나 지위나 경제력 차이가 감사, 존중, 감탄의 표현을 금지하진 않는다. “칭찬은 향수와 같다. 향을 내되 코를 찔러서는 안 된다.” 감탄과 인정은 섬세한 감각이 필요하다. — 61p
죽은 후에도 성공은 남아야 한다. 내가 떠나면 무엇이 남을까? 나는 어떻게 기억될까? 나는 무엇을 남기고자 하는가? 상류층은 정년퇴임 직전에야 이런 질문을 처음으로 떠올리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태어나서부터 늘 사회적이고 세대 포괄적인 활동을 경험한다. …중략… 수명엔 한계가 있으므로 인간은 자신의 생애를 넘어 영속하는 무언가를 남긴다. 이 능력을 생산성(Generativität)이라고 부른다. …중략… “세계가 더 나은 미래를 맞도록 돕는 사람은 자기 자신을 위해 그렇게 하는 것이다. 생산성은 공동 선과 자기 이익을 연결한다.” …중략… 자신의 유한성을 알고 더 의미 있는 삶을 사는 것, 그것이 바로 필생의 사업이다. 누구든지 더 나은 세계를 만드는 데 공헌함으로써 자신의 흔적을 남기는 뿌듯함을 보상으로 받을 수 있다. — 3p
연말에 만다라트 계획표를 세울 기회가 있었다. 연 단위 계획은 잘 세우지 않는 편이지만, 그래도 이런 기회를 통해 다시 한번 나를 돌아볼 수 있었다.
내 거대한 목표는 ‘우주에 나의 흔적 남기기’이다. 이런 거창한 목표를 공유하면 질문을 받을 때가 많다. 왜 하필 그런 추상적이고 손에 잡히지 않는 목표를 가지고 있냐고, 흔적 남기기 따위가 삶에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삶에 별 의미가 없어 보이는 이 목표를 가지고 있는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죽음이 너무 두렵기 때문이다. 돈이나 명예 따위는 100년 남짓한 인생의 동기부여가 되기에 내게는 너무나 부족했다. 그래서 그보다 더 궁극적이고, 어쩌면 조금 허무맹랑하기까지 한 목표를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다. 책에서 내가 말하는 ‘흔적’이라는 단어를 명시적으로 표현한 게 인상적이었다.
좋아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 가장 크게 성공한다. 돈, 권력, 명예욕이 아니라 과제에 대한 순수한 열정이 1순위이어야 합니다. 좋아하는 일을 하는 사람은 자신의 모든 가능성을 총동원하기 때문이죠. — 78p
‘흔적 남기기’라는 궁극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산 이후부터 ‘순수한 열정’이 내 판단 기준의 1순위가 되었다. 나는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 스스로에게 묻는다. ‘내게 평생 먹고 살아도 남을 만한 돈이 있더라도, 지금 이 일에 시간을 쓸 것인가?’ 그 대답이 Yes라면 그 일에 시간을 쏟는다.
역설적이게도 나는 이전에 집착에 가까울 정도로 돈을 좇으며 살았었으나, 오히려 그 우선순위가 한참 내려간 지금 나의 소득과 자본은 훨씬 많아졌다. 돈을 싫어한다고 하면 거짓말이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그 숫자 하나하나가 내 판단 기준이 되지는 않는다. 누군가는 위선이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정말로 그렇다.
문화 자본
선도자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예전부터 훈련된 취향뿐 아니라 현재는 어떤 취향이 선망받는지 꿰뚫는 통찰력이 필요하다. 이런 이유만으로도 문화자본이 경제자본보다 훨씬 더 높게 평가된다. 마세라티, 롤렉스나 대저택은 좋고 아름답다. 하지만 소유자가 브랜드명을 잘못 발음하거나 잭슨 폴록의 그림을 보며 “우리 애들도 저 정도는 그리겠다”라고 평가하면 그 사실이 명백해진다. 사치를 싸잡아 비난하거나 아름다움을 부정적으로만 치부하는 건 편협한 태도다. 계속 위에 머물고 싶다면 수백 번 흉내 내는 것보다 단 한 번 독특함을 누리는 편이 훨씬 낫다.
나는 사치를 좋아하진 않지만 사치재 그 자체에는 관심이 많다. 정확히 말하면 그 사치재를 소비하는 사람들의 다양한 생각이 궁금한 것이다. 물론 분에 맞지 않게 과시용으로 사치재를 소비하는 사람도 있지만, 정말로 그 가치를 소비하는 사람도 있다. 비행기를 탈 때 단지 그 몇 시간을 위해 이코노미 클래스 가격의 몇 배에 달하는 퍼스트 클래스를 이용하는 사람도 있다. 나 같이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당연히 이해되지 않는 소비이다.
하지만 나에게 당연하지 않은 일이라고 해서 그 모든 것이 쓸데없고 의미없는 일이라고 치부하는 건 섣부르다. 누군가에게는 그것이 가성비 좋은 일일 수도 있다. 나는 이런 사람들과 대화할 기회를 갖는 것을 좋아하며, 그것을 이해하는 데 시간과 리소스를 투자하는 것을 아까워하지 않는다.
신흥 부자들은 미숙한 사치를 하는 경우가 많다. 외제 차, 고급 식당, 귀금속, 명품 가방에 많은 돈을 소비하는 것에서 그들이 갑작스럽게 이룩한 부에 아직 익숙해지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높이 오르고 싶다면 끊임없이 높은 곳의 코드를 이해하고 내면화해야 한다. 모두가 롤렉스나 포르셰를 갈망하고, 그것이 ‘특별한 것’이라고 믿는 사치 문화 속에서 삽니다. 그저 다른 포르셰들과 나란히 정체 구간에 서 있을지라도 말이죠. — 86p
여기서 말하는 ‘높은 곳의 코드를 이해하고 내면화하는 것’ 중 가장 가성비가 좋은 일은 역시 책이다. 어차피 나와 아비투스의 범주가 겹치지 않는 사람들과 대화를 나눌 일은 별로 없다. 서로의 상식에 공감하지 못하기 때문에 대화해도 재미가 없고, 친구가 되기도 어렵다. 하지만 책은 만 원 남짓한 돈으로 그 생각을 습득할 수 있다.
취향과 문화자본은 가장 비싸고 가치 있으며 갖기 어려운 자본이다. 벼락부자가 된다면 당장 백화점에 가서 명품 시계를 살 수 있다. 이걸 얻는 데 필요한 건 돈뿐이다. 그저 카드를 결제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가치 있는 것은 돈만으로 살 수 없는 자본이다. 상류층의 아비투스를 가진 사람은 이런 문화자본을 많이 가지고 있으며, 아이러니하게 그들의 부유함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나는 쇼핑하는 걸 좋아한다. 그러나 단지 비싼 브랜드 옷을 입는 사람보다는 자신의 스타일에 맞춰 옷을 잘 입는 사람이 되고 싶다. 발렌타인 30년을 맥주 마시듯 마시는 사람보다는 증류소의 특징을 이해하며 위스키 향기의 차이를 즐길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미숙한 사치는 멋이 없다.
지식 자본
아무리 지식이 많아도 구글의 정보량을 따라잡을 수 없다. 우리의 머리는 점점 생각의 공장으로 바뀔 것이다. 즉, 정보보다 정보를 기반으로 무엇을 만드느냐가 더 중요할 것이다. 21세기에는 지식에서 가치를 창조하는 것이 성공을 좌우한다. 지식을 실용적으로 활용하기, 비판적으로 성찰하기, 창의적으로 연결하기. 지식이 많을수록 아비투스에 여유가 생긴다. — 128p
대학 졸업장의 가치에 대한 갑론을박을 뒤로 하더라도, 자신이 갖고 있지 않은 아비투스를 가진 곳에 소속되고 그 경험들을 간접적으로 공유하는 것은 의미가 크다.
예를 들어 내가 대기업에 입사한 건 지금 생각하면 우습기도 하지만 등 떠밀리듯이 갔다고 표현하는 게 적절할 것 같다. 주변 사람 중 뚜렷한 목표가 없던 사람들이 졸업할 때가 되면 마치 고등학교에 진학하듯 당연하게 가는 곳이었고, 나도 당시에는 별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입사 동기들 중에는 대학교 1학년 때부터 그곳에 입사하기 위해 모든 인생의 초점을 맞춘 친구도 있었다.
충분히 좋은 직장이지만 누군가에겐 최선의 선택이 아닐 수도 있다. 만약 내가 그 친구와 같은 아비투스를 공유했다면 지금처럼 자신 있게 회사를 나와 다른 방향성을 모색하는 건 선택지에 있지도 않았을지 모른다. 아비투스의 범위가 넓은 것은 선택지의 시야를 넓힌다.
성공한 인생은 여러 분야에서 실현될 수 있다. 무엇이 내게 최선일까? 나는 무엇에 심장이 뛰고, 무엇을 싫어할까? 경제적 성공? 사회적 인정? 성취와 의미? 혁신과 창조? 이런 질문을 자신에게 던지는 사람은 아비투스도 고려한다. 초보자의 오만에 빠지지 않게 조심하라. “내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나는 안다.” 초보자는 특히 첫걸음을 뗀 후에 자신의 실력을 과대평가한다. 비행기 조종사는 첫 800시간 비행 뒤에 사고율이 서서히 오른다. 의사들은 보통 수술을 16회에서 20회 했을 때 실수를 저지른다. 아직 루틴으로 몸에 배지 않았지만 조심성이 약해졌을 때를 조심하라. — 137p
여기서도 엔지니어링 기반 접근법을 사용한다. 미숙한 주니어들 중에는 새로운 지식을 학습하는 것이 단지 ‘모른다’ → ‘안다’의 상태 전환이라고 여기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실제로 일어나는 일은 훨씬 복잡하다.
- ‘(내가 모른다는 것을) 모른다’
- ‘(내가 모른다는 것을) 안다’
- ‘(내가 모르는 게 무엇인지) 안다’
- ‘(내가 무엇은 모르고, 무엇은 아는지) 안다’
- ‘(몰랐던 것 중 무엇을 알게 되었는지) 안다’
이 과정을 단순히 ‘모른다’ → ‘안다’로 치부한다면 본인이 알고 있다는 착각을 하게 되며, 멍청한 말을 자신 있게 하게 된다. 이는 엔지니어링뿐만 아니라 공부나 모든 인생의 일에 접목되는 방법이다.
그래서 박사학위를 가진 교수 같은 사람은 본인의 전문 분야에 대해 논할 때 ‘모른다’, ‘알 수 없다’, ‘확실하지 않다’ 같은 보수적인 답을 더 많이 한다. 반면 자신 있게 ‘안다’라고 말하는 사람 중 대부분은 1단계, “내가 모른다는 것을 모른다”를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물체는 왜 서로를 끌어당기나요?”라고 고등학생에게 묻는다면 물리 교과서에서 배운 내용으로 설명하며 뿌듯해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리처드 파인만 같은 위대한 물리학자에게 똑같은 질문을 한다면 그는 이렇게 답할 것이다. “나는 모른다.”
그래서 나는 채용을 할 때도 경력에 비해 화려한 기술 스택을 나열해 놓은 지원자를 보면 경계한다. 단기간에 그 모든 것을 제대로 소화했다면 출중한 천재이기 때문에 절대로 놓쳐서는 안 되겠지만, 안타깝게도 지금껏 면접을 봤던 사람 중 그런 경우는 없었다.
경제 자본
얼마나 가졌는가.
돈을 목표로 보지 마라. 탐욕이나 인색함은 경제자본을 늘리지 못한다. 당신의 인격 발달을 위해 재정적 가능성을 이용하라. 인생의 절반이 다 갈 때까지 기다리지 마라. 이미 한 걸음 앞서 있는 사람을 기준으로 삼아라. 그는 어떤 노력을 하고 무슨 말을 하고 무엇을 입고 무엇을 다루며 무엇을 단행하는가? 고급 아비투스는 단지 돈을 많이 가진 것 그 이상이다. — 199p
갑자기 큰돈을 벌면 아주 기쁠 것이다. 그러나 아비투스는 새로운 상황보다 느리게 절뚝거리며 따라온다. 특히 초기에는 허황된 소비, 어리석은 투자, 잘못된 조언, 이 세 가지 요인이 사회적 상승을 방해한다. 갑자기 생활을 바꿔선 절대 안 된다. “2년이 기한이다. 그때가 되면 돈을 누리면서 의미 있게 사용할 수 있다.” — 200p
언어 자본
어떻게 말하는가.
성공한 사람의 겸손한 자세를 ‘카운터 시그널링’이라고 부르는데, 한 문장으로 기술하면 이렇다. “과시하지 않음으로써 과시한다.” — 258p
반면 자신의 지위가 위태롭다고 느끼는 사람은 말 끊기를 상대방의 무례가 아닌 개인적인 공격으로 받아들인다. 그래서 대화가 쉽게 싸움으로 번진다. 자신의 권리를 요구해야 한다면, 그것은 높은 지위의 증거가 아니다. — 261p
지나친 외래어는 존경심보다 거부감을 일으킨다. ‘커밋하다’, ‘디벨롭하다’ 대신에 ‘확약하다’, ‘발전시키다’라고 하라.
사회 자본
하지만 모두가 출신 아비투스를 뛰어넘을 수 있다. 성공을 드러내는 외형, 고급 취향, 관계에 적응할 수 있다. 그러나 한 가지만은 할 수 없다. 그들은 상류층 가정에서 태어난 또래와 똑같은 사회자본을 가질 수 없다. 계급 상승자라는 낙인은 결코 완전히 지워지지 않는다. “자신의 성공을 드러내는 건 즐겁고 보람 있는 일이다. 그러나 과거를 보여주는 건 그렇지 않다.” — 294p
당신의 아비투스로 그곳에 머무는 것은 마치 학교에서 배운 프랑스어를 활용해 파리에서 사는 것과 같다. 힘들다. 쉽지 않다. 불안하다. 그것이 정상이다. 하지만 다행히 최정상 집단에 입장하는 확실한 방법이 있다. 그들의 수준에 맞는 품위 있는 회원임을 입증하라. — 303p
후천적 학습으로 네이티브처럼 행동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당연하다.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사회자본에서 마지막에 어떤 열매가 맛있게 익을지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안 된다. 무언가를 수확하려면 무언가를 뿌려야 한다. — 313p
노력이 언제나 확실한 보상을 가져다 줄 거라는 환상을 버려라. 하지만 쏘지 않으면 여전히 명중률은 0%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최정상에서는 ‘선봉에 서서 싸우지 않아도 된다’는 확신이 있다. 최정상 리그에서는 대화하고, 발견되고, 부름을 받는 것이 중요하다. “부름 받기, 입증하려 애쓰지 않기. 무엇도 입증할 필요가 없다.”
이번 이직 과정에서 내가 그랬다. 많은 곳에서 부름 받았지만, 입증하려고 노력하지 않았다. 애써서 무언가 하지 않았다. 그저 나를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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