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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cob's second brain 탐색
Book

쓸만한 인간

5 min read

|160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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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볍게 읽고 싶은 책을 찾던 중 우연히 박정민 배우가 쓴 에세이가 눈에 들어왔다. 별로 기대하지 않고 읽었는데 생각보다 재미있어서 쉬지 않고 읽었다. 특히 박정민님 특유의 개성 있는 문체가 재미있었다. 책을 읽고 나니 그 문체에 중독된 상태라서 오늘 리뷰는 박정민님 문체를 약간 흉내 내서 써볼까 한다. 의식이 흘러가는 대로 써내려가면서 위트를 놓치지 않는 문체다. 아름다운 미사여구는 없지만 매력적인 맛이 있다. 잘 흉내 낼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평소 박정민 배우에 대한 내 인상은 ‘연기를 정말 잘하는 배우’였다. <파수꾼>과 <동주>를 인상 깊게 봤다. 특히 <파수꾼>은 내가 좋아하는 독립영화를 꼽으라면 세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작품이다. <타짜:원 아이드 잭>도 영화 자체는 기대이하 였지만 박정민 배우의 연기는 매우 좋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책을 읽고 나서 박정민 배우에 대한 관심이 많아져서 최근에는 박정민, 김고은 주연의 <변산>도 봤다. 이준익 감독님 작품이라서 기대했는데 영화 자체는 나랑은 많이 안 맞았다. 인물들에게 공감도 안가고 전개도 어색하고 … (감독님, 배우님, 관계자님 죄송합니다) 물론, 이 <변산>에서도 박정민님 연기는 여전히 일품이었다.

책 리뷰를 하기로 해놓고 영화이야기를 너무 많이 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오자. 하여튼 내가 박정민님에 대해서 알고 있던 건 연기 잘하는 배우 였다는 것이다. 글을 쓰는지도 몰랐고, 책을 냈다는 사실도 몰랐다. 그리고 내가 읽은 <쓸 만한 인간>이 2016년에 이미 출판되었었고, 이번에 다시 나온 개정증보판이라는 사실은 더더욱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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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연예인이 쓴 책에 대한 선입견이 있는 편이다. 아무래도 전업 작가들보다 글의 퀄리티가 떨어질 수밖에 없을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명세를 통한 마케팅으로 손쉽게 베스트셀러가 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연극무대에서 실력을 닦아온 전문 배우들을 제치고 아이돌 가수가 단번에 영화 주연 자리를 꿰차는 모습을 보는 느낌이랄까. 그런데 박정민님은 그런 나의 선입견을 알고 있다는 듯, 책의 도입부부터 작가님들에게 존경을 표하면서 시작한다. 그가 글을 가벼운 마음으로 쓰고 있지 않다는게 느껴졌다. 실제로 글의 소재 자체는 가벼운 일상으로부터 왔지만, 글자 하나하나에 꾹꾹 눌러 담은 그의 생각들은 결코 가볍게 느껴지지만은 않았다.

밑줄 친 문장들

요지는 책을 읽자는 거다. LCD에서 반짝거리는 글자와 책 속에 진득하니 박힌 활자는 엄연히 다르다고 생각한다. 조금은 보수적인 성향때문에 이런 진부한 이야기를 하는지도 모르곘지만, 그 책이 자신의 인생을 바꾸어 줄 수도 있다는 거다. 책을 통해서라면 아버지를 이해할 수도 있고, 좌절한 자를 사랑할 수도 있고, 형사가 되어 범인을 쫓을 수도 있고, 헤어진 연인과의 기적 같은 재회도 가능하다. 서점으로 가서 그 어떤 책도 좋으니 잘 읽힐 만한 책을 한 권 사서 집으로 오길 권한다. 그리고 머리맡에 놔두시라. 그럼 언젠가는 읽게 될 테고 당신의 내일이 조금 더 영리한 하루가 되는 듯한 느낌을 받을 지도 모른다. <쓸 만한 인간> - 책 中에서

그가 책을 좋아하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내가 평소에 가진 책에 대한 생각과 비슷했다.


수첩에 적힌 이상한 글자들이 지금의 나에게 큰 위로가 된다. 스물다섯의 내가 스물여덟의 나를 위로한다. 동생 주제에 꽤나 위로를 잘한다. 가끔씩 느끼는 감정의 요동을 글자로 남겨보길 바란다. 그중 8할은 훗날 이불을 걷어찰 글자들이지만 그중에는 분명 나를 세워주는 글자가 있을 것이다. <쓸 만한 인간> - 수첩 中에서

가끔 나도 예전에 쓴 글을 통해 과거의 나와 대화하는 경험을 한다. 글을 남긴다는 건 단순히 기록 이상의 의미가 있다.


아니 그냥 내 인생이 ‘상실의 시대’ 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다. 그리고 책을 보며 생각한다. 그래, 이런 게 사랑일 수도 있겠다. <쓸 만한 인간> - 상실의 시대 中에서

나도 최근에 ‘상실의 시대’를 재미있게 읽었다. 박정민님의 인생 책 중 하나라고 한다.


엄마한테 전화를 걸었다. 목이 쉬어서 말을 못한다. 얼마나 울었으면, 저승으로 가신 엄마의 엄마는 좋은 곳으로 가셨을 거다. 이승에 남겨진 우리 엄마는 이제 그만 울었으면 좋겠다. 적어도 이제 내 눈치는 좀 그만 보셨으면 좋겠다. <쓸 만한 인간> - 엄마 中에서

‘내 눈치는 좀 그만 보셨으면 좋겠다.’ 라는 문장이 그냥 마음에 들었다.


이 시대가 편집의 시대고 무관심의 시대다. 비단 영화나 TV프로그램뿐만이 아니다 우리 삶 깊숙이 파고들어와 있다는 거다. 상대의 말을 편집해서 듣고 어떠한 상황을 오역하는 상황이 빈번하게 발생한다. 사실 관심도 없으면서 듣고 싶은 대로 들어버리고 금세 잊어버리는 일이 잦다. 후에 “어 그랬어? 난 이런 줄 알았는데. 네가 그렇게 얘기했잖아. 잘못 들었나 보네. 미안해.” 정도로 상황을 정리해버리고 다시 나의 판단에 집중한다. ( 중략… ) 듣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맞는 것을 고르는 게 중요해졌다.어쩌다 틀리면 꾸중을 듣고, 실수하면 돌이킬 수 없는 시대에서 맞는 것을 고르는 데 혈안이 되어버렸다. 그저 들어달라는 것이었는데 그러다가 오히려 틀린 답을 말하는 바람에 상대는 더 힘들고 죄스러운 감정을 부풀린다. <쓸 만한 인간> - 서른 中에서

평소의 내 생각과 비슷해서 밑 줄을 잔뜩 그었다. 요즘은 정말 사람들 간 의사소통이 힘들어지고 있다. 서로 자기가 할 말만 하는 사람들이 늘어간다.


서른쯤이면 뭔가 되어있을 줄 알았다. 열심히 산다고도 살았다. 소신도 있고 신념도 있고, 그것들을 크게 배신한 적도 없었다. (중략)… 그렇게 서른이 되었고, 소신과 신념만 남은 다 큰 어른아이 하나가 덩그러니 서있다. 분명 스무살에 예상했던 서른 살의 내 모습은 아니다. 부끄럽다. 내가 예상했던 서른을 나 대신 사는 저 앞의 녀석들이 부럽기도 하다. 어제의 스물아홉이 오늘 서른이 되어버린 것이 뭐 대수겠는가 그저 책임감이 조금 더 생겼다는 것과 이제는 좀 더 열심히 해볼 수 있겠다는 결심 정도가 달라진 점이라면 달라진 점이랄까. 닥쳐보니 별 차이가 없는 것도 같다. 20대에 예상했던 서른과는 조금 다른 모습이라는 것뿐이고, 이렇게 되어버린 마당에 까짓것 마흔을 기약하면 그만이다. <쓸 만한 인간> - 서른 中에서

최근에 나도 서른 살이 되었다. 서른 살의 박정민님. 위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비슷한 생각을 하고 계셨군요. (지금은 어떤가요?)


사람 냄새가 물씬 풍기는 책이다. 배우 박정민도, 작가 박정민도, 나랑 비슷한 생각을 하고 고민도 하고 사는구나. 누구나 그렇게 성장하면서 사는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런 성장의 과정들을 글로 정리하기에 그렇게 멋진 연기를 할 수 있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그가 찍을 다음 영화만큼, 그가 펴낼 다음 책도 기다려진다.

그리고 아직 이 책을 읽지 않은 분들에게,

그냥 한번 읽어보시라. 그저, 무심결에 한번 읽어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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