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각
6년만에 하루키의 장편 소설이 출간 되었다고 해서 바로 구매해서 읽었다. 누군가 좋아하는 작가가 있냐고 물어본다면 나는 하루키를 말한다. 너무 유명한 작가이기에 어쩌면 클리셰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뻔한 대답을 하는 사람처럼 보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빼놓지 않고 말한다. 읽기 쉽다고 평가받는 그의 에세이와는 달리, 장편소설은 내용이 난해하다는 평이 많다. 게다가 늘 비슷한 배경을 가진 인물의 등장과 반복되는 플롯으로 자기복제형 작품만 찍어낸다는 평을 받기도 한다. 나도 어느정도 공감하는 말이다. 매번 주변인물의 상실을 겪은 인물의 등장과 성장하는 자아, 개연성 없는 신비로운 사건들이 주를 이룬다. 여태까지 내가 읽은 하루키의 소설 중에 작가의 코멘트가 달렸던 책은 없었는데 특이하게 이번 책에는 작가의 후기가 있었다. 이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글귀가 있다.
한 작가가 일생 동안 진지하게 쓸 수 있는 이야기는 기본적으로 그 수가 제한되어 있다. 우리는 그 제한된 수의 모티프를 갖은 수단을 사용해 여러 가지 형태로 바꿔나갈 뿐이다.
세간의 비평이 어떻든, 그는 자신이 가장 잘 할수 있는 이야기를 수십 년 간 여러가지 형태로 풀어내고 있다. 마치 단일 메뉴만을 고집하는 오래된 맛집처럼.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사랑받는 이유는 이런 이야기를 좋아하는 나같은 사람이 세상에 많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 하루키 책에서는 항상 음악에 대한 묘사가 등장한다. 주로 재즈나 로큰롤 음악이 많다. 나는 책에 묘사된 음악을 들으며 읽곤 한다. 마치 영화의 메인 타이틀곡을 들으면 영화의 한 장면이 떠오르듯, 음악과 함께 들으면 소설 속의 문장이 떠올라 더 기억에 잘 남는다. 노르웨이의 숲을 읽을 땐 비틀즈의 노르웨이의 숲을 들었고, 1Q84를 읽을 땐 야나체크의 신포니에타를 들었다. 해당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유튜브 채널에 가보면 책을 읽다가 음악을 들으러 왔다는 사람들의 댓글이 많다. 그런데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에서는 이전 책처럼 마음을 사로잡는 음악은 없어서 조금 아쉬웠다.
- 음악과 더불어 음식이나 술에 대한 묘사도 자주 등장한다. 특히 위스키나 와인에 대한 이야기가 많다. 이번 책도 위스키를 한 잔 마시며 읽었다.
- 하루키의 다른 책에서 그렇듯 여지 없이 성적인 묘사가 등장한다. 그래도 다른 책들만큼 노골적이진 않다. 이야기 전체 맥락에서 봤을 때 굳이 이런 묘사가 필요한가? 라고 생각했을 때 꼭 그렇지도 않다는 생각이다. 어쩌면 하루키는 이 소재를 빼놓고는 도저히 이야기를 쓸 수 없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 나는 예전부터 ‘꿈’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 꿈에 관련 된 구절 중 가장 좋아하는 건 장자의 호접몽이다. ‘꿈에서 깨니 장자의 꿈에서 나비가 된 것인지, 나비의 꿈에서 장자가 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라는 의미인데, 어쩌면 이 내용을 길게 풀어놓은 소설이 이 책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 눈에 보이는 것과 실제로 경험한 것만이 진짜라고 할 수 있을까? 철학적 의미의 ‘허구’와 ‘진실’은 무엇인가. 의식 속에서 일어나는 일은 정말로 의미 없는 허구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인가?
댓글 (0)
아직 댓글이 없습니다. 첫 번째 댓글을 남겨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