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날, 이현우는 여덟 시에 회사에 도착했다.
이현우가 이 시간에 나오는 일은 없었다. 개발팀은 출퇴근이 자유로워서, 아이가 있거나 가정이 있는 사람들은 일찍 나와 일찍 들어갔지만, 이현우처럼 젊고 혼자인 축들은 대개 열 시쯤에야 어슬렁어슬렁 나타났다.
이현우 본인도 마지막으로 여덟 시에 출근한 게 언제였는지 가물가물했다. 이른 시간이라 개발팀 자리는 드문드문 차 있었고, 그중 이현우 또래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스스로도 조금 우스웠다. 얼굴도 모르는 사람 때문에 두 시간이나 일찍 나온 꼴이었다.
커피를 뽑는 척, 그는 개발2팀 쪽을 지나갔다. 창가에서 먼 안쪽, 프린터와 가까운 구석. 한 자리가 유난히 휑했다. 모니터가 꺼져 있고, 파티션에 붙어 있던 포스트잇 자국만 네모나게 남아 있었다.
저기였구나. 이현우는 확신했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지만, 그냥 알 것 같았다.
자리로 돌아오는데, 반대편 복도에서 박수영이 걸어오는 게 보였다. 인사팀 박수영. 이현우의 입사 동기였다. 인사팀은 개발팀과 달리 출근 시간이 칼 같아서, 여덟 시면 이미 자리를 지키고 있을 사람이었다. 손에는 납작하게 접힌 종이 상자 몇 개를 들고 있었다.
박수영이 이현우를 보더니 걸음을 멈췄다.
“어? 너 이 시간에 웬일이야.” 진짜 놀란 얼굴이었다.
“너 맨날 열 시에 겨우 기어 나오잖아. 네가 여덟 시에 있는 거, 나 처음 보는 것 같은데. 아침에 임원 보고라도 있어?”
“그냥. 일찍 눈이 떠져서.” 이현우는 박수영이 든 상자를 눈으로 가리켰다. “그건 뭐야.”
“여기 이상현 과장님. 부고 돌았잖아. 자리 정리하러 왔어.” 박수영이 그의 옆에 상자를 내려놓고 테이프를 죽 뜯었다.
“내가 인사팀 밥 먹은 지가 몇 년인데, 별의별 일 다 해봤거든. 근데 현직으로 다니던 직원이 돌아가셔서, 그 자리를 내 손으로 치우는 건 이번이 처음이네.”
이현우는 말없이 그 옆에 섰다.
“회사가 이럴 때 진짜 정 없어.” 박수영이 서랍을 열며 목소리를 낮췄다.
“평소엔 함께 성장하는 가족이니 뭐니 그렇게 떠들잖아. 근데 막상 십몇 년 몸담은 사람이 죽으니까, 무슨 흙탕물이라도 튈까 봐 그러는 것처럼 후딱 치워버리려고 하네. 자리 빨리 비우라고 위에서 벌써 몇 번을 쪼는지 몰라. 애도는 무슨. 그냥 빈자리 하나 빨리 없애고 싶은 거지.”
박수영은 서랍에서 물건을 하나씩 담았다. 나오는 게 많지 않았다. 머그컵, 뚜껑 없는 텀블러, 손목 보호대, 상비약 몇 통, 접이식 우산, 여벌 양말. 한 사람의 육 년이라기엔 지나치게 단출했다.
그리고 마지막 칸에서, 낡은 다이어리 한 권과 검은색 외장하드 하나가 나왔다.
박수영이 외장하드를 들어 잠깐 이리저리 보더니 한숨을 쉬었다.
“이게 골치야.”
“왜.”
“여기 회사 자료가 들었는지, 개인 건지 알 수가 없거든. 회사 데이터가 있으면 유가족한테 그냥 넘기면 안 돼. 보안 문제라서. 그렇다고 고인 물건을 우리 인사팀이 함부로 열어볼 수도 없고.” 박수영이 외장하드를 손등으로 툭툭 쳤다.
“개발2팀에 좀 봐달라고 했더니, 팀장부터가 자기 팀 일도 아니라는 식이야. 죽은 사람 하드 열어보는 거 다들 꺼림칙해하는 것 같기도 하고. 자기 팀 자료 있을 수도 있는데 조금이라도 관심 있어야 하는 거 아니야? 참, 이럴 때는 회사 다닐 맛 안 난다니까. 징글징글해 아주.”
이현우는 그 외장하드를 봤다. 손때로 반질반질해진 겉면을.
“내가 볼게.”
박수영이 그를 돌아봤다.
“네가?”
“회사 자료면 어차피 개발 쪽 누군가는 확인해야 되잖아. 그 정도야 내가 제일 빠르고.” 이현우는 대수롭지 않은 척 말했다.
“개인 물건까지 겸사겸사 유가족한테 내가 전해드리지 뭐. 어차피 옆 팀이고.”
박수영이 그를 잠깐 살폈다. 이현우가 이런 일에 손을 들 사람이 아니라는 걸, 동기인 박수영은 알았다. 이현우는 티도 공도 남는 일에는 누구보다 빨랐지만, 아무것도 남지 않는 일에는 발을 담그지 않는 사람이었다.
“너 안 하던 짓 한다.”
“자료 확인은 어차피 누가 해야 되는 일이라며. 마침 시간 되는 사람이 하는 거지.”
박수영은 더 캐묻지 않았다. 사실 그녀에게는 이 골칫거리를 넘길 사람이 필요했고, 이현우만큼 확실한 사람도 없었다. 그녀는 외장하드와 다이어리를 상자에 넣고 뚜껑을 접었다.
“그럼 부탁 좀 할게. 하드는 회사 자료 있으면 나한테 알려주고, 개인 거면 유가족분 드려.” 박수영이 핸드폰을 꺼냈다. “주소랑 연락처 보내줄게. 미리 문자 한 통 넣고 가. 불쑥 가면 그쪽도 곤란하니까.”
이현우는 상자를 받아 들었다. 가벼웠다. 그런데 그 가벼움이 이상하게 손목에 오래 남았다.
이상현의 집은 회사에서 지하철로 사십 분쯤 떨어진 오래된 아파트 단지에 있었다.
이현우는 토요일 오후에 갔다. 미리 문자를 넣었고, 언제든 괜찮다는 짧은 답을 받았다. 상자를 무릎에 안고 가는 내내, 그는 자신이 지금 무얼 하고 있는지 몇 번이나 되물었다. 회사 자료를 확인한다는 건 절반쯤 핑계였다. 그건 하드만 받아 회사에서 처리하면 될 일이었다. 다른 팀인 이현우가 관여할 일은 더더욱 아니었다. 굳이 유족을 만나러 그 사람의 집까지 갈 이유도 아니었다.
진짜 이유는 다른 데 있었다. 열어보지 않은 메시지 한 통. 그리고 자신이 통째로 몰랐던 한 사람. 그걸 이현우는 알고 있었다.
단지는 낡았지만 정갈했다. 화단이 잘 손질돼 있었고, 놀이터에서 아이들이 뛰어놀았다. 이현우는 12층에서 내려 초인종 앞에 섰다. 누르기 전에, 그는 잠깐 옷매무새를 만졌다. 왜 그러는지 모르면서.
문이 열렸다. 삼십 대 후반쯤으로 보이는 여자였다. 눈이 부어 있었지만 표정은 차분했다.
“이현우 과장님이세요? 오시느라 고생하셨어요.”
“네. 삼가 조의를 표합니다.” 이현우는 상자를 조심스럽게 건넸다. “회사에서 이상현 과장님 자리 정리한 거, 개인 물건들입니다.”
“고맙습니다. 이런 걸 직접 가져다주시고.” 이상현의 아내가 상자를 받았다. “들어오세요. 차라도 한잔 드시고 가세요.”
이현우는 사양하려다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집 안은 조용했다. 거실 한쪽에 아직 영정 사진이 놓여 있었다. 이현우는 그제야 이상현의 얼굴을 처음으로 제대로 봤다. 선한 인상에, 조금 피곤해 보이는 눈. 웃는 듯 마는 듯한 표정. 매일 같은 층을 육 년을 썼는데도, 이현우는 여전히 그를 기억해낼 수 없었다.
이현우는 소파에 앉아 차를 한 모금 마셨다.
“해외 출장 중이어서 장례식에도 가보지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이현우는 능청스럽게 거짓말을 했다.
“아니에요. 주말인데도 이렇게 짐까지 챙겨서 와주셨는데요.”
“과장님, 회사에서 뵐 때마다 늘 조용하고 성실한 분이셨는데. 이렇게 갑자기 가셔서, 다들 많이 놀랐습니다.”
이현우는 이상현을 본 기억조차 없었다. 하지만 처음 보는 사람과도 오래 알던 사이처럼 말하는 것, 상대를 편하게 해주는 말, 자리에 맞는 말을 하는 것은 이현우가 가장 잘하는 일 중 하나였으니 어려울 게 없었다.
그런데 아내가 고개를 들었다.
“아, 역시.” 그녀가 옅게 웃었다. “남편이 집에서 회사 사람들 이야기는 잘 안 하는데, 과장님 이름을 말한 적이 있어요. 이현우 과장이라고, 개발1팀.”
이현우의 손이 찻잔에서 잠깐 멈췄다.
”…제 이름을요?”
“네. 자주는 아니고, 몇 번요. 남편이 원체 회사 얘기를 안 하는 사람이라 제가 회사 사람 이름을 거의 몰라요, 그래서 오히려 기억에 남았나 봐요.” 그녀가 그를 봤다.
“그래서 아까 과장님 문자 받고, 어 그 이름이네, 했어요. 남편이랑 가까우셨나 봐요.”
이현우는 뭐라 답해야 할지 몰랐다.
방금 건 그냥 인사치레였다. 이상현이 누구인지도 모르면서 꺼낸 빈말. 늘 하던 대로, 자리에 맞게 던진 말일 뿐이었다. 그런데 상대는 그 빈말을 진담으로 받았고, 심지어 진짜로 남편이 자기 이름을 입에 올린 적이 있다고 했다. 가까웠냐고 물었다. 이현우는 이상현과 단 한 번도 말을 섞은 적이 없었다. 그런데 이상현은, 얼굴도 모르는 이현우의 이름을 집에서 몇 번이나 꺼냈다는 것이다.
”…네, 뭐.” 이현우는 얼버무렸다. 아니라고 할 수도, 그렇다고 할 수도 없었다.
그러자 아내가 몸을 조금 앞으로 기울였다.
“저기, 그럼 혹시 남편이 회사에서는 어땠어요?” 그녀가 물었다.
“저는 그걸 잘 몰라요. 집에서는 회사 얘기를 통 안 하는 사람이라. 무슨 일을 하는지, 사람들이랑은 어떻게 지내는지. 십 년을 같이 살았는데도, 그건 몰라요. 참, 조금 더 관심 가질걸 그랬어요. 이제 와서 후회해도 소용없지만.”
이현우는 말문이 막혔다.
뭐라고 해야 하나. 성실하셨어요? 좋은 분이셨어요? 다 남한테 주워들으면 할 수 있는 말이었다. 아니, 주워듣지도 못했다. 이상현이 회사에서 어땠는지 이현우는 정말로 아무것도 몰랐다. 얼굴조차 몰랐던 사람이다. 그런데 아내는 지금, 자기가 모르는 남편의 절반을 이현우가 채워주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다들, 좋게 보셨어요.” 이현우는 겨우 말했다. “맡은 일 착실히 하시고.”
빈말이었다. 아내는 그 빈말을 가만히, 소중하게 들었다. 처음 듣는 이야기라도 되는 것처럼 고개를 끄덕이면서.
“그랬구나.” 그녀가 나직이 말했다. “집에서는 워낙 말이 없어서. 회사에서도 그러려니 했거든요.”
이현우는 차마 아내를 마주 보지 못했다.
원래대로라면 이쯤에서 적당한 위로를 남기고 일어서면 될 일이었다. 그런데 그의 입은, 그가 미처 막기도 전에 움직였다.
“혹시 최근에 과장님이 뭔가 힘들어하시거나, 마음 쓰는 일이 있으셨어요?”
묻고 나서 이현우는 스스로 흠칫 놀랐다. 방금 그건 거의 형사가 캐묻는 투였다. 조문 온 사람이 유족에게 할 질문이 아니었다. 이현우는 자신이 이 죽음의 배경이 궁금해서가 아니라, 그저 회사 동료로서 이 집에 찾아온 것이라는 사실을 상기했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그 호기심을 억누르려고 애썼다.
아내는 그 질문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잠깐 생각하더니 천천히 대답했다.
“글쎄요. 요즘 좀 그런 것 같긴 했어요. 밤에 잠을 잘 못 자고, 핸드폰을 오래 들여다보고.” 그녀가 말했다. “근데 뭐 때문인지는 저도 몰라요. 물어보면 늘 별거 아니라고만 해서.”
이현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이상 캐물을 수는 없었다.
잠시 뒤, 그가 아까 건넨 상자 쪽으로 눈을 돌렸다.
“저, 실은 오늘 온 데는 이유가 하나 더 있습니다. 그 안에 외장하드가 하나 있을 텐데, 회사 자료가 들어 있으면 저희가 확인을 해야 해서요. 개인적인 거면 그대로 두시면 되고요.”
아내가 상자를 끌어당겨 열었다. 방금 이현우가 가져온 그대로였다. 그녀는 안을 뒤져 검은 외장하드와 낡은 다이어리를 꺼냈다. 둘 다 잠깐 손에 들고 들여다봤지만, 뭐가 뭔지 모르는 얼굴이었다.
“저는 이런 거 봐도 몰라요. 하드는 열 줄도 모르고.” 그녀가 다이어리를 몇 장 넘겨봤다. 빼곡한 글씨가 스쳐 지나갔다. “이것도 무슨 일 얘기 같은데, 읽어도 무슨 소린지 모르겠고.”
그러다 그녀가 그것들을 이현우 쪽으로 내밀었다. 잠깐 망설이는 손이었다.
“과장님이 한번 봐주시겠어요? 하드에 회사 자료 있으면 회사에 돌려주시고요. 아니면 그냥 저한테 다시 주세요.” 그녀가 다이어리 끝을 만지작거리다가 이어서 말했다. “그리고 .. 바쁘시겠지만 부탁 하나 드려도 될까요?”
“그럼요, 제가 도와드릴 수 있는 거라면 해드리겠습니다.”
“남편이 요즘 뭘 그렇게 붙들고 있었는지, 혹시 알게 되면 그것만 저한테 알려주실 수 있나요? 저는 그게 알고 싶은데 알 방법이 없어서요.”
”…네.” 이현우는 그녀가 건네는 다이어리를 받았다. “볼게요. 보고, 꼭 돌려드리겠습니다.”
젊은 나이에 남편을 떠나보낸 그녀에 대한 안타까움, 그녀에게 이상현과 친했었다는 거짓말을 한 미안함을 느꼈다. 하지만 이내 그 감정들은 이상현이 자신에게 남겼던 메시지, 종종 자신의 이름을 아내에게 말했다는 이상현 과장에 대한 호기심으로 뒤덮여버렸다.
이현우의 머릿속에서는 어떠한 생각이 점차 번져나갔다.
궁금하다. 궁금해서 미쳐 버릴 것 같다. 꼭 알고 싶다. 아니, 알아내고야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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