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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cob's second brain 탐색
9 to 6 · 2 / 4화

이현우 - 1

6 min read

이현우는 느지막이 10시쯤 출근했다.

“어제 또 한잔 했나봐? 동기모임 간다더니. 이제 현우씨도 몸 생각해야 돼. 살살해 살살.” 개발 1팀 박상근 팀장이 이현우 어깨위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아, 네. 동기가 청첩장을 주더라고요. 이제 진짜 저만 남았어요.”

“현우씨도 얼른 장가가야지, 뭐하는거야”

“팀장님, 이번에 저한테 또 프로젝트 하나 주셨던데, 데이트할 시간은 주시고 말씀하셔야 하는 것 아닙니까…”

“쏘리,쏘리, 현우씨 말고는 정말로 맡길 사람이 없었어. 우리 사정 알잖아. 고생 좀 해줘”

박상근 팀장은 현우의 어깨를 몇 번 툭툭 쳤다.

“저번 달에도 그러셨는데요. 하하..”

“부탁좀 할게요. 그렇게 어려운 일 아니니까, 데이트는 일 끝내고 가. 오케이?”

“예썰..! 여부가 있겠습니까” 현우는 손끝을 눈썹에 올려 장난스러운 경례 자세를 취했다. 그리고 박상근 팀장은 경례를 받는 시늉을 했다. 박상근 팀장이 경례를 받아주고 나서야 현우는 경례한 손을 내렸다.

“그럼 수고, 아 참, 현우씨 후배왔어, 현우씨 옆자리. 그리고 현우씨가 신입사원 멘토야.”

“아, 저는 옆에 누구 앉아있으면 업무 효율 안나오는데요. 어떻게 좀 안되겠습니까?”

“허허 미안해요, 좀 챙겨줘, 아무리봐도 여기밖에 없더라고. 그렇다고 내일 모레 출산 앞둔 장대리한테 맡겨? 집에서도 애 키우고, 회사에서도 애 키우고,”

“아이고 팀장님, 말씀을 또 그렇게하시면 제가…”

현우가 대답하기도 전에 박상근 팀장은 복도 끝 회의실 쪽으로 마치 뛰는 것 같은 속도로 걸어서 사라져버렸다. 현우는 자신의 옆 자리 빈 책상을 쳐다 봤다. 출근할 때는 눈치채지 못했는데, 배낭이 하나 덩그러니 의자위에 놓여있었다. 옆자리에 신입이라니, 거기다가 신입사원 베이비시터까지 해야하나. 라고 속으로 생각했다. 현우는 귀찮음이 몰려왔지만, 이내 잊어버리고 모니터로 시선을 옮겼다.

배낭의 주인은 오후가 되어서야 나타났다.

오리엔테이션을 마치고 올라온 모양이었다. 새 셔츠를 입고 있었는데, 목깃이 아직 빳빳한 게 오늘 처음 꺼내 입은 티가 났다. 회사가 복장 자유라는 걸 아직 모르거나, 알아도 첫날부터 편하게 입을 배짱은 없는 부류. 이현우는 그런 걸 눈으로 한 번 훑는 것만으로 대충 읽었다. 사람을 빨리 파악하는 건 그의 오래된 재주였다. 긴장한 어깨, 조심스러운 눈, 먼저 말 걸기를 기다리는 자세. 튀지 않으려고 애쓰는 사람. 흘러가는 대로 여기까지 온 사람.

솔직히 이현우는 이런 유형에 큰 기대를 걸지 않았다. 회사에서 위로 올라가는 건 결국 자기 존재를 어떻게든 드러내는 사람들이었고, 저렇게 몸을 사리는 친구들은 대체로 몇 년 뒤에도 같은 자리에 있었다. 하지만 그건 그거고, 지금 저 신입은 자신의 후배였다. 이현우는 자기 사람은 챙기는 사람이었다. 그게 그의 방식이었고, 그의 평판이기도 했다.

그는 의자를 굴려 다가갔다.

“김준수 씨?”

“아, 네.” 신입이 벌떡 일어섰다. “안녕하세요, 김준수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목소리가 생각보다 작게 나왔다. 이현우는 가볍게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이현우예요. 앉아요, 앉아. 여기 뭐 군대 아니니까.”

준수가 어색하게 웃으며 다시 앉았다. 이현우는 그 얼굴에서 낮의 자기 기억을 잠깐 떠올렸다. 첫 출근 날. 다들 아는데 자기만 모르는 것 같던, 여기 있어도 되는 사람인가 싶던 그 기분. 오래전 일이었다.

“처음엔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를 거예요. 다 그래요. 천천히 하면 돼요.”

위로하려고 한 말은 아니었다. 사실이 그랬으니까. 그런데 준수의 어깨가 아주 조금 내려가는 게 보였다. 이현우는 그런 걸 놓치지 않았다. 사람은 별것 아닌 말 한마디에 풀리기도 하고 얼어붙기도 했다. 어느 쪽을 누를지 아는 게 이현우의 일이었다.

그는 준수의 팀 공용 워크스페이스 계정부터 만들어줬다.

“이 쪽 폴더는 과거 프로젝트 자료들이고요. 1번폴더는 지금 진행중인 프로젝트들이에요. 지금 진행 중인 파일들은 편집하면 안돼요. 아니다, 그냥 1번 폴더는 당분간 열어보지마세요. 실수로 편집할수도 있으니까.”

“네.”

“아참, 준수 씨, 오후에 팀 전체 회의 있는데 그건 안 들어와도 돼요. 첫날부터 그거 들어봐야 하나도 못 알아들어요. 주간회의 시간에 따로 인사할 시간은 있을테니까, 그 시간에 우리 팀 업무 과거자료부터 익혀요. 누가 와서 왜 회의안들어가냐고 물어보면 그냥 내가 시킨 일 하고있다고 대답해요.”

준수가 조금 놀란 얼굴로 그를 봤다. 회의에 빠져도 된다는 말을, 그것도 사수가 먼저 해줄 줄은 몰랐다는 표정이었다.

“그리고 저기 탕비실 안쪽에 커피 머신 하나 더 있어요. 사람들 잘 몰라서 거긴 안 붐벼요. 줄 서기 싫으면 거기 써요.”

“아, 네. 감사합니다.”

이현우는 별거 아니라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실제로 그에게는 별거 아니었다. 이런 사소한 정보들을 그는 늘 넉넉하게 쥐고 있었고, 필요한 사람에게 하나씩 흘려주는 걸 아까워하지 않았다. 그렇게 흘린 호의들이 어디선가 돌아온다는 걸, 그는 경험으로 알았다. 물론 지금 준수에게 뭔가 돌아올 걸 계산한 건 아니었다. 그냥 손에 익은 친절이었다.

오후 동안 틈틈이 이현우는 준수에게 팀 업무에 대해서 설명했다. 절반쯤 알아듣고 절반쯤 못 알아듣는 얼굴이었지만, 그거면 충분했다. 첫날은 원래 그런 날이었다.

“해보다가 모르는 거 있으면 언제든 물어봐요. 눈치 보지 말고. 그리고—” 이현우는 잠깐 자기 모니터에 쌓인 걸 흘긋 보고는 덧붙였다. “시간 나면 커피 한잔해요. 내가 살게.”

말해놓고 언제 마실지는 정하지 않았다. 요즘 그에게는 커피 한잔할 짬도 잘 나지 않았다. 박상근 팀장이 오늘 아침에 던지고 간 새 프로젝트만 해도 벌써 머리가 지끈거렸다. 하지만 그 말을 하는 순간만큼은 진심이었다. 뉴페이스가 주는 약간의 설렘 같은 것도 있었고, 이 친구가 여기서 조금은 덜 외롭게 시작했으면 하는 마음도 없지 않았다.

여섯 시가 되자 이현우는 준수에게 말했다.

“아참, 준수씨, 숙제하나 줄게요. 무조건 정시에 퇴근해요. 눈치 보지말고. 나중에는 가고싶어도 못갈 수도 있어. 갈수있을 때 가요. 입사동기들이랑 번개도 하고 그럴거아냐,”

“과장님은요?”

“난 좀 남았어요. 이거 하나만 마무리하고.” 이현우는 모니터를 턱으로 가리켰다. “먼저 가요. 내일 봐요.”

준수가 인사를 하고 일어섰다. 옆을 지나가면서 준수가 자기를 잠깐 보는 걸, 이현우는 느꼈지만 고개를 들지는 않았다. 화면에는 처리해야 할 것들이 여전히 줄줄이 남아 있었다. 정시에 가라고 말해주는 것과, 자기가 정시에 가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였다. 사실 6시 퇴근 대열에 끼어 귀가해 본 적이 언젠지 가물가물 했다.

준수가 엘리베이터 쪽으로 완전히 사라진 뒤에도, 이현우는 한동안 모니터 앞에 그대로 앉아 있었다. 그리고 늘 그랬듯, 퇴근 전 마지막 의식을 시작했다.

메일함을 열어 안 읽은 숫자를 0으로 만드는 것. 하루 동안 수많은 사람이 자신에게 밀어 넣은 요청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처리해, 밀려 있는 일의 상태를 0으로 떨어뜨리는 것. 그것이 그의 오래된 퇴근 루틴이었다. 이현우는 처리하지 못한 일을 등 뒤에 남겨둔 채 집으로 돌아가는 걸 참지 못했다. 남겨진 숙제가 있다는 그 찝찝함이 싫어서, 그는 몇 시간을 더 붙어 있어서라도 숫자를 0으로 맞춰놓고서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행히 그에게는 그럴 능력이 있었다. 쌓인 걸 깔끔하게 쳐내는 데 이현우는 능했다. 그래서 그의 처리를 기다리느라 발이 묶이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오히려 반대였다. 그가 답을 보내고 공을 넘기고 나면, 이제 기다리는 쪽은 저편이었다. 회사의 수많은 일들이 그의 손을 거쳐 다음 사람에게로 넘어갔다. 그렇게 하루가 끝날 무렵이면 오히려 늘 이현우 쪽이, 수많은 사람들의 회신을 기다리는 입장이 되어 있었다.

그날 저녁도 다르지 않았다. 준수가 나가고 사무실이 반쯤 비었을 무렵, 이현우는 마지막으로 메일함을 훑어 안 읽은 숫자를 0으로 떨어뜨리고 있었다. 하나, 둘. 답장을 보내고, 처리 완료로 넘기고. 숫자가 줄어드는 걸 볼 때의 그 개운함을 그는 좋아했다.

마지막 한 통이 화면 맨 위에 남았다. 제목은 ‘부고 안내’, 발신자는 인사팀이었다.

이현우는 무심코 열었다.

부고 - 당사 개발2팀 이상현 과장이 별세하였음을 알려드립니다.

빈소: ○○병원 장례식장 2호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그는 그 이름 앞에서 잠깐 멈췄다.

이상현. 개발2팀. 과장.

얼굴이 떠오르지 않았다.

이현우는 화면을 다시 봤다. 개발2팀이면 복도 하나 건너 옆 팀이었다. 그는 개발2팀 팀장을 알았고, 거기 대리 둘도 알았고, 지난 회식 때 옆자리에 앉았던 신입 이름까지 기억했다. 그런데 이상현이라는 과장은, 아무리 떠올려도 얼굴이 그려지지 않았다.

과장이면 짬이 제법 되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을, 그것도 바로 옆 팀 사람을 자신이 모른다는 게 이상했다. 매일 지나다니는 길에서 한 번도 본 적 없는 문을 발견한 것 같았다.

이현우는 처리 완료 버튼 위에 커서를 올렸다가, 누르지 않았다. 메일함의 숫자는 0이었다. 오늘도 깨끗했다. 그런데 그 한 통만은, 왠지 지워지지 않고 화면에 남아 있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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