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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cob's second brain 탐색
9 to 6 · 3 / 4화

이현우 - 2

5 min read

이현우는 그날 평소보다 늦게까지 남았다. 박상근 팀장이 던지고 간 프로젝트 문서를 열어두긴 했지만, 눈은 글자 위를 겉돌았다. 자꾸 부고 메일 쪽으로 손이 갔다. 열어보고, 닫고, 또 열어봤다. 내용은 세 줄이 전부여서 새로 읽을 것도 없었는데.

이상현. 개발2팀. 과장.

퇴근길 지하철에서도 그 이름이 따라왔다. 이현우는 손잡이를 잡고 서서, 자신이 지금 왜 이러고 있는지 생각했다. 슬픈 건 아니었다. 그는 스스로에게 정직한 편이었고, 얼굴도 모르는 사람의 죽음에 슬픈 척할 만큼 감상적이지도 않았다. 회사에서 사람은 죽지 않아도 늘 사라졌다. 부서를 옮기고, 이직을 하고, 조용히 관두고. 어제까지 매일 보던 얼굴이 오늘부터 안 보여도 한 달이면 잊혔다. 죽음이라고 크게 다를 것도 없었다. 냉정하게 들리겠지만 이현우는 그렇게 생각했고, 그 생각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그를 붙든 건 죽음이 아니라 모른다는 사실이었다.

이현우는 회사에서 자신이 모르는 사람이 있다는 걸 오래 잊고 살았다. 그는 모두를 알았다. 기획팀 누가 이번에 승진에서 미끄러졌는지, 디자인팀 팀장이 어느 카페 커피를 좋아하는지, 재무팀에 언제 전화를 걸면 결재가 빨리 나는지. 그런 걸 아는 게 그의 세계였고, 그 세계는 빈틈이 없다고 그는 믿었다. 그런데 그 매끈한 표면에 작은 흠집 하나가 생긴 것이다. 육 년을 먼저 들어와 바로 옆 팀에 앉아 있던 사람을, 자신이 통째로 몰랐다는 흠집.

그게 자꾸 신경을 잡아당겼다. 흠집은 원래 그렇다. 아무리 작아도, 손끝이 자꾸 그리로 갔다.

집에 도착해 불을 켜자 빈방이 그를 맞았다. 이현우는 외투도 벗지 않은 채 소파에 앉았다. 편의점 봉지를 무릎에 올려두고, 대신 핸드폰을 꺼냈다.

조직도를 다시 열었다. 개발2팀, 이상현. 회색 실루엣의 기본 프로필. 입사일을 봤다. 자기보다 육 년 빨랐다. 육 년을 먼저 다니고도 아직 과장인 사람. 이현우는 그 숫자를 잠깐 들여다봤다. 어떤 사람일까. 육 년이면 뭐라도 됐어야 하는 시간인데. 그렇게 생각하다가,

이현우는 자기 안에서 익숙한 판단 하나가 스치는 걸 느꼈다. 무능했거나, 눈치가 없었거나, 아니면 그냥 있는 듯 없는 듯 묻어가는 데 만족한 사람. 회사에는 그런 부류가 꼭 있었고, 이현우는 늘 그런 이들을 볼 때마다 조금 답답해했다. 저렇게 다녀서 뭐가 남나 싶어서.

죽은 사람을 두고 할 생각은 아니었다. 이현우도 그건 알았다. 그래서 얼른 그 판단을 접었다. 하지만 접었다는 건, 이미 떠올렸다는 뜻이기도 했다.

핸드폰을 내려놓으려다가, 습관처럼 사내 메신저 앱을 열었다.

퇴근 후에도 확인하는 것 중 하나였다. 새 알림은 없었다. 그런데 목록을 무심코 내리다가, 아래쪽에서 읽지 않은 표시가 붙은 대화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이현우의 메일함의 안 읽은 메일 수는 늘 0이었다. 그건 그의 자부심이었다. 하지만 메신저는 사정이 좀 달랐다. 메일은 답을 해야 하는 일이었고, 메신저는 꼭 그렇지만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답을 해야 하는 사람과 안 해도 되는 사람이 있었다. 중요한 사람이 보낸 건 즉시 열어 즉시 답했다. 그렇지 않은 건 미뤘고, 미룬 것들은 대체로 다시 열리지 않았다.

목록 아래로 조용히 가라앉아, 언젠가 보겠다는 흐릿한 표시만 단 채 남았다. 그는 그걸 딱히 죄스럽게 여기지 않았다. 세상 모든 메시지에 답할 수는 없었고, 우선순위를 매기는 건 능력이지 잘못이 아니었다.

읽지 않은 표시가 붙은 그 대화의 상대는, 이상현이었다.

이현우는 손가락을 멈췄다.

날짜를 봤다. 나흘 전.

죽기 며칠 전이었다.

그는 대화창을 열었다. 짧은 메시지 하나가 떠 있었다.

이현우 과장님, 안녕하세요. 개발2팀 이상현입니다. 바쁘신 거 아는데, 혹시 시간 되실 때 잠깐 여쭤볼 게 있어서요. 급한 건 아닙니다. 편하실 때 답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 아래, 읽음 표시는 없었다. 방금 이현우가 연 것이 처음이었다.

이현우는 그 문장들을 한참 바라봤다.

여쭤볼 게 있어서요. 급한 건 아닙니다. 편하실 때.

그는 이 메시지를 받은 기억이 전혀 없었다. 나흘 전이라면, 김준수가 입사하기도 전인데, 그날 그는 무얼 하고 있었나. 늘 그렇듯 바빴을 것이다. 이 메시지가 도착했을 때, 미리보기에 뜬 이름을 그는 분명 봤을 것이다. 이상현. 모르는 이름. 개발2팀. 급할 것 없어 보이는 상대. 그리고 그는 늘 하던 대로 손끝을 움직였을 것이다.

나중에.

그 나중은 오지 않았다. 그에게도, 이상현에게는 더더욱.

이현우는 소파에서 등을 뗐다. 무릎 위의 편의점 봉지가 바닥으로 미끄러졌지만 줍지 않았다.

이상하게 심장이 조금 빨리 뛰었다. 죄책감은 아니었다. 아니, 죄책감이라고 부르기엔 그는 잘못한 게 없었다. 모르는 사람의 메시지를 나중으로 미룬 것뿐이었다. 그건 하루에도 수십 번씩 하는 일이었고, 대부분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이번에는 그 사람이 죽었을 뿐이다. 그건 우연이지 그의 탓이 아니었다. 단지, 이런 사안에 엮여 회사생활이 피곤해지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걱정만 스치듯 지나갔다.

머리로는 그렇게 정리가 됐다. 그런데도 뭔가가 목 아래에 걸린 것처럼 내려가지 않았다.

이현우는 그 메시지를 다시 읽었다. 이번엔 문장이 아니라, 그 문장을 쓴 사람을 상상하려 애쓰면서.

바쁘신 거 아는데. — 이상현은 이현우가 바쁜 사람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얼굴도 모르는 사이인데, 이현우가 어떤 사람인지는 알았다는 뜻이다. 회사에서 이현우가 어떤 위치인지, 얼마나 여기저기서 찾는 사람인지. 그걸 알면서, 그 바쁜 사람에게 굳이 말을 걸었다.

혹시 시간 되실 때. 편하실 때. — 몸을 최대한 낮춘 문장이었다. 미안해하면서, 거절당할 걸 미리 각오하면서 보낸 것 같은. 이현우는 이런 종류의 메시지를 잘 알았다. 아쉬운 쪽이 보내는 메시지. 뭔가를 청하는 쪽이 쓰는 문장. 회사에서 이런 걸 받는 건 늘 이현우 쪽이었고, 보내는 건 늘 다른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이상현은 왜, 하필 자신에게 이걸 보냈을까.

옆 팀이라고는 해도 접점이 없었다. 같이 일한 적도, 말을 섞은 적도 없었다. 이현우가 기억하는 한 단 한 번도. 육 년을 먼저 다닌 과장이, 아무 연고도 없는 아랫팀 과장에게, 죽기 며칠 전에, 몸을 낮춰 뭔가를 물으려 했다.

무얼 물으려던 걸까.

이현우는 답장 칸에 커서를 올렸다. ‘안녕하세요. 메시지 확인이 늦었습니다.’ 현우는 무언가 홀린듯 메시지를 적어놓고는 깜빡이는 커서를 한참 봤다.

“지금 뭐하는거야, 내가 정신이 나갔나 보네” 현우는 혼자서 중얼거렸다.

당연히 이제 와서 답을 보내는 건 아무 의미가 없었다. 받을 사람이 없으니까. 읽을 사람이 없으니까. 그가 뭐라고 쓰든, 그 메시지는 영영 읽음 표시가 찍히지 않을 것이다. 이상현이 자신의 메시지에 끝내 답을 받지 못했듯이.

답장은 보내지않았다. 핸드폰을 내려놓고 창밖을 봤다. 밤이었다. 건너편 건물들에 드문드문 불이 켜져 있었다. 저 창들 안에도 누군가는 혼자 편의점 도시락을 데우고, 누군가는 오늘 못 받은 답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이현우는 오랫동안 그런 걸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에게 사람이란 대체로 두 종류였다. 필요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이상현은 명백히 후자였다. 나흘 전까지만 해도 존재조차 몰랐던, 알아야 할 이유가 조금도 없던 사람.

그런데 지금, 이현우는 그 사람이 무얼 물으려 했는지가 견딜 수 없이 궁금했다.

애도가 아니었다. 그는 여전히 슬프지 않았다. 이건 다른 것이었다. 답을 알 수 없게 된 질문 하나가 눈앞에 놓여 있고, 이현우는 평생 답을 못 찾는 걸 참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메일함을 0으로 만들어야 잠이 오는 사람. 밀린 걸 남겨두지 못하는 사람.

그리고 이건, 그가 절대로 0으로 만들 수 없는 한 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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