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상 깊은 문장들
경력 연수와 의도적 수련
저는 이렇게 예측합니다. “소프트웨어 개발에서 점차 경력 연수를 중시하는 문화가 사라질 것이다. 따라서 개발자들은 자신의 경력 연차외에 다른 것에도 신경을 써야한다.” 몇 년 전 ‘1만 시간 법칙’이 유행했습니다. 국내외의 여러 책에서 그 법칙을 언급하고 있지요. 그런데 이 법칙을 특정 분야의 전문가가 되는 데 1만 시간의 경험이 필요하다는 법칙으로 이해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중략..) 그런데 좀 이상하지 않나요? 우리는 하루 세 번 3분씩 이를 닦습니다. 대략 다섯 살부터 닦았을 것이고 죽기 전까지 닦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닦는 경력과 실력에 어떤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나이 육칠십쯤 되면 도사 수준은 못 되어도 준전문가 소리는 들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런데 나이 들었다고 이 잘 닦는 사람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1만 시간의 법칙을 만든 주인공, 안데쉬 에릭손은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딱 잘라 말합니다. 55년 동안 걸었다고 걷는 게 점점 더 나아지고 있는 건 아닙니다. 자신이 즐기는 걸 한다고 해서 더 뛰어나게 될 것이라고 믿는 것은 미신입니다. 그가 말하는 1만 시간 법칙에서 1만 시간은 ‘자신의 기량을 향상시킬 목적으로 반복적으로 하는 수련’을 한 시간을 일컫습니다. 그런 수련을 그는 의도적 수련이라고 합니다. 그냥 경험이 아니고 매우 특수한 형태의 수련 방법입니다. 27p
연차가 곧 실력이라는 생각은 편하다. 시간을 들였다는 사실만으로 면죄부가 생기기 때문이다. 하지만 에릭손의 말처럼 ‘그냥 오래 한 것’과 ‘의도적으로 수련한 것’은 다른 종류의 시간이다. 시니어가 되면서 가장 무서운 것은 모르는 것이 아니라, 익숙한 방식으로만 일하면서 그것을 성장이라 착각하는 일이다. 매년 똑같은 한 해를 N번 반복하지 않으려면, 일부러 불편한 자리, 일부러 어려운 문제, 일부러 피드백 받는 자리를 만들어야 한다.
객관이라는 착각
결국 결정하는 것은 사람입니다. 그 사람 마음에 드냐. 안 드냐, 이겁니다. 안 들면 어떤 이유를 들어서든 반대하게 됩니다. 도대체 ‘누구’의 객관이냐 이거죠. 가만히 보면 우리는 그동안 우리의 객관만 신경을 쓰는 저질러 왔습니다. 139p
내가 회의에서 자주 쓰는 말이 있다. “객관적으로 봤을 때 이게 맞지 않나요?” 그런데 그 ‘객관’은 대개 말하는 사람의 객관이다. 데이터로 무장한 의견이 항상 이기는 것도 아니고, 옳은 논리가 항상 채택되는 것도 아니다. 결국은 듣는 사람의 마음에 들어야 한다. 이걸 인정하면 일하는 방식이 달라진다. 자료를 더 모으기 전에, 상대가 어떤 맥락에서 이 문제를 보고 있는지를 먼저 이해해야 한다.
감정과 이성은 분리되지 않는다
이런 사실에도 불구하고 감정과 이성을 깨끗하게 분리할 수 있으며, 또 그렇게 해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좌뇌와 우뇌의 기능을 깨끗하게 분리할 수 없는 것 처럼 감성과 이성을 분리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 감정과 이성의 혼합 상태를 스스로 인정하려고 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인간 이성의 위대함에 먹칠을 한다고 생각해서일까요. 141p
엔지니어 세계에서 ‘감정적’이라는 단어는 흔히 비난의 도구로 쓰인다. 마치 감정을 배제하기만 하면 더 좋은 결정에 도달할 수 있는 것처럼. 하지만 감정을 억누른 결정은 감정이 없는 결정이 아니라, 그저 감정을 인정하지 않은 결정일 뿐이다. 내가 왜 이 제안에 반대하고 싶은지, 왜 이 코드를 보면 짜증이 나는지를 솔직히 들여다보는 편이, 그것을 ‘논리’로 포장하는 것보다 훨씬 정직하다.
설득은 이해에서 시작된다
결론은, 객관성이라고 하는 것은 상대적이며, 내가 생각하는 객관이 상대의 객관이 아닐 수 있고, 그렇기 때문에 설득에 성공하려면 우선 그 사람을 이해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런 이유로 설득을 하기 위해 ‘객관적’자료를 모으는 부분 이상으로 상대를 이해하는 데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합니다. 144p
기술 결정 PR이 반려되는 가장 흔한 이유는 기술적으로 틀려서가 아니라, 상대를 설득하지 못해서다. 위 인용과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자료를 만드는 데 100의 시간을 쓴다면, 그 자료를 누구에게 어떤 순서로 보여줄지 설계하는 데 적어도 30은 써야 한다는 게 요즘의 결론이다.
불확실할수록 단계적 접근은 위험하다
그런데도 우리는 이렇게 말합니다. “이번 일은 복잡하고 불확실하니까 철저하게 계획하고 단계적으로 접근하자!” 이 말은 곧, 이번 일은 불확실하니까 초보처럼 일하자는 말과 똑같습니다 156p
이 문장이 이 책에서 가장 인상깊었다. 내가 자주 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불확실성이 높을수록 사람들은 더 그럴듯한 계획을 요구한다. 그래야 위로 보고하기 편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작 불확실한 일은 작게 시도하고 빨리 피드백 받는 방식으로만 풀린다. ‘철저한 계획’은 확실성이 높은 일에 어울리는 방법론이고, 불확실한 일에 그걸 그대로 적용하는 순간 초보의 일하기가 된다.
품질은 사다리를 오르내리며 만들어진다
더 높은 품질을 얻기 위해서는 이 사다리를 오르락내리락 반복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어느 한 단계를 한 번에 완료하는 것은 더 낮은 품질로 가는 지름길입니다. 특히나 문제와 해결책에 불확실성이 높을 경우. 161p
요구사항 → 설계 → 구현 → 검증을 한 번에 통과시키려는 워터폴 마인드와 정확히 반대되는 이야기. 좋은 설계는 구현하면서 발견되고, 좋은 요구사항은 검증하면서 재정의된다. 한 번에 완성하려는 욕심이 오히려 품질을 떨어뜨린다는 말은, 코드 리뷰를 받을 때 PR을 잘게 쪼개야 하는 이유와도 닿아있다.
심리적 안전감은 ‘실수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실수율이 낮은 조직은 실수를 적게 하는 게 아니라 실수를 공개하는 것이 공격을 받을 수 있는, 그래서 실수를 감추는 조직이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심리적 안전감이란, 내 생각이나 의견, 질문, 걱정, 혹은 실수가 드러났을 떄 처벌받거나 놀림받지 않을 거라는 믿음을 말합니다. 168p
심리적 안전감을 ‘실수해도 괜찮은 분위기’ 정도로 가볍게 쓰는 경우가 많은데, 이 책의 정의가 훨씬 정확하다. 드러내도 안전한가가 핵심이다. 장애가 났을 때 가장 먼저 묻는 질문이 “누가 그랬어?”인 조직과 “무엇이 우리를 그렇게 행동하게 만들었나?”인 조직은 1년 뒤 완전히 다른 곳이 된다.
마이크로 인터랙션
팀원이 불편한 문제를 제기하거나, 어리석어 보이는 질문을 하거나, 부족한 의견을 얘기하거나,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저지를 때 여러분은 어떤 마이크로 인터랙션을 보여주고 계신가요? 170p
공식적인 1:1이나 회고에서의 말보다, 누군가가 어리석은 질문을 던졌을 때의 그 0.5초짜리 표정, 한숨, 끊고 들어가는 말투가 팀의 문화를 만든다. 시니어가 될수록 무서워해야 하는 것은 내가 작정하고 하는 말이 아니라, 내가 반사적으로 보이는 반응이다. 동료들은 그걸 캐치하고, 조직의 퍼포먼스에도 반영된다.
방법론보다 사람이다
애자일 방법론 도입을 원하는 팀장이라면 “나는 어떤 팀장인가”를 먼저 자문해봐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내가 어떤 팀장인지가 전혀 바뀌지 않으면서 새 방법론만 도입한다고 무슨 효과가 있을까요. 반대로, 항우울제보다도 강력한 설탕물을 쓸 수 있는 의사처럼, 별 볼 일 없어보이는 방법론일지라도 그걸 처방하는 팀장에 따라 전혀 다른 효과가 있을 겁니다. 215p
스크럼, 칸반, OKR을 도입하면 조직이 바뀔 것이라 기대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같은 방법론도 누가 운영하느냐에 따라 정반대의 효과를 낸다. 개발 7년차, 매니저 1년차에서 ‘도구 만능론을 맹신하지 말라’고 했던 문장과 정확히 같은 결의 이야기다. 방법론은 그것을 운영하는 사람의 그릇만큼만 작동한다.
생각
이 책의 제목은 ‘함께 자라기’이지만, 읽고 나서 가장 오래 남은 질문은 *“나는 어떻게 자라고 있는가”*였다. 1만 시간을 채우는 일과 의도적으로 수련하는 일은 다르고, 객관적으로 옳은 결정과 실제로 통과되는 결정은 다르며, 철저한 계획과 불확실한 일에 어울리는 일하는 방식은 다르다는 것. 익숙한 단어들을 한 겹 벗겨서 다시 보게 만드는 책이다.
특히 인상 깊었던 건 사람과 감정을 정면으로 다루는 태도였다. 흔히 애자일을 도구·프로세스·세리머니의 묶음으로 이해하지만, 김창준 저자는 시종일관 ‘결국 사람’이라고 말한다. 심리적 안전감, 마이크로 인터랙션, 팀장의 자기인식 같은 주제들이 그렇다. 이건 개발 7년차, 매니저 1년차에서 카미유 푸르니에가 말하던 커뮤니케이션이 원활한 준수한 개발자의 가치, 우리, 프로그래머들에서 밥 아저씨가 말하던 디테일을 책임지는 사람들의 정체성과도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실무자보다 리더로서 하는 일이 많아지면서 느끼는 가장 큰 변화는, 기술적으로 옳은 답을 찾는 일보다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 같은 그림을 그리는 일이 훨씬 어렵다는 점이다. 이 책은 그 어려움을 원래 그런 것이라고 위로해주지 않는다. 대신 “네가 더 잘 자라야 팀이 자란다” 고 조용히 요구한다. 그 요구가 부담스러우면서도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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