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알라딘 다시 보기]
알라딘과 인간의 욕망, 그리고 자유
지브리 & 디즈니 OST 오케스트라 연주회를 보고왔다. 그 중 알라딘 메들리가 가장 감명 깊었는데, 공연에 다녀오고 나서 알라딘 애니메이션을 다시 한 번 봤고, 알라딘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알라딘은 내가 좋아하는 디즈니 애니메이션 Top3 안에 항상 들어갔다. 그 중 1등은 항상 라이온킹이었지만, 알라딘에 대해 깊이있게 곱씹어보니 훨씬 더 매력적으로 느껴졌고, 이제는 알라딘이 1등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렇다면 알라딘은 어떤 이야기인가? 어린 시절 알라딘을 봤을 땐 흔한 성장 드라마, 혹은 가난한 남자 주인공이 예쁜 공주와 사랑에 빠지는 비현실적인 남성형 신데렐라 스토리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머리가 굵어지고 다시 살펴보니, 알라딘은 ‘자유’에 대한 이야기로 보인다.
알라딘의 주요 줄거리에는 램프의 요정 지니와 지니가 마법처럼 들어주는 소원이 중심에 있다. 이 소원은 총 7번 사용된다. 알라딘이 4번, 자파가 3번 사용한다. 이를 자세히 살펴보면 알라딘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짐작해볼 수 있다.
자파의 소원
먼저 자파의 소원부터 살펴본다. 자파는 알라딘의 악당으로, 자파의 소원은 전형적인 인간의 욕망을 담고 있다.
- 술탄(왕)으로 만들어 달라.
- 추상적인 힘, 명예, 권력에 대한 욕망이다.
- 가장 강한 마법사로 만들어달라.
- 물리적, 직접적인 힘에 대한 욕망이다.
- 이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존재(램프의 요정 지니)로 만들어 달라.
3번 소원으로 자파는 세상에서 가장 강한 힘을 얻지만, 그 댓가로 작은 램프에 갇히는 신세가 된다.
알라딘이 처음 지니를 불러냈을 때, 지니는 소원 사용방법에 대해서 설명하며 우려섞인 경고를 덧붙인다.
‘대부분 램프를 가진 사람이 내게 비는 소원은 권력, 돈, 명예를 달라는 것이다. 하지만 내가 지켜본 바로 그들은 그것들을 아무리 많이 가지더라도 끝없이 욕망하고, 절대로 만족하지 못한다. 그러니 너가 그 방향으로는 가지 않기를 바란다.’
알라딘은 ‘나는 그런 사람들과 다르다.’ 라며 만화 주인공다운 면모를 보여준다. 하지만 이에 지니는 시큰둥하게 반응하며 믿지 않는다. 왜냐하면 지니는 수천년동안 수 많은 주인들을 만나왔고, 결국 그들이 어떤 선택을 했는지 겪어봤기 때문이다. 결국 인간은 인간은 이 욕망의 구속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았기 때문일 것이다.
알라딘은 여기에 오히려 지니에게 낯선 질문을 덧붙인다. ‘지니, 너라면 어떤 소원을 빌것 같아?’ 지니는 답한다. ‘그런 질문은 처음 들어봐서 당황스럽다.’ 이 대목에서 지니는 오랜 세월 동안 기대하고 실망했던 경험 때문인지 아직까지는 믿지 못하더라도, ‘이 사람은 지금껏 만났던 주인들과 조금 다를 수도 있다.’ 라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그렇기에 알라딘을 인간적으로 대하고, 후에 설명할 알라딘의 두번째 소원에서도 지니의 규칙을 조금 어기는 리스크를 감수하면서까지 알라딘의 생명을 적극적으로 구하기도 한다.
다시 자파의 이야기로 돌아가본다. 자파는 과연 말도 안되는 싸이코이며 이해하지 못할 악당인가? 물론 만화영화는 기본적으로 권선징악 메시지를 전달하고 그것을 처단하는 주인공에게 정당성을 부여해야하기 때문에 자파의 폭력적이고 잔인한 면을 부각한다. 예를들어 자스민과 강제로 결혼하려고 하거나 술탄을 무자비하게 고문하고, 알라딘을 해하려는 모습이다.
하지만 이런 요소를 걷어내고 그가 램프를 얻고 지니에게 빌었던 소원들만 보면, 오히려 알라딘보다 훨씬 전형적인 인간 군상에 가깝다. 오늘날 경제적 자유, 파이어족을 외치며 잠들기전 ‘로또 복권에 당첨되게 해주세요.’ 라고 빌거나 SNS에 멋진 모습을 포장하여 게시하는 욕망이 본질적으로 자파의 소원과 무엇이 다른가? 그들의 손에 램프를 쥐어줬을 때 과연 지니에게 ‘너라면 무슨 소원을 빌고 싶어?‘라고 되물을 사람이 몇 명이나 있을까? 자파의 욕망은 나와 우리들이 가진 욕망 그 자체이다.
자파는 지니가 알라딘에게 말했던 우려의 메시지 처럼 첫번째 두번째 소원으로 이미 충분한 명예와 권력, 힘을 얻었음에도 이에 만족하지 못하고 세번째 소원조차 더 강한 힘을 추구하다가 결국 파멸에 이른다.
알라딘의 소원
이번엔 알라딘의 소원을 살펴본다.
- 동굴에서 탈출하게 해달라.
- 지니에게 소원을 빈다고 명시적으로 말하지 않고 지니가 능력을 과시하도록 자극해서 지니 스스로 능력을 발휘하게 만든다. 사실상 소원이지만, 알라딘의 재치 때문에 공식 소원으로 카운팅 되지않는다.
- 왕자로 만들어달라.
- 이는 자파의 ‘술탄(왕)이 되게 해달라.‘라는 소원과 비슷해보이지만 그 배경은 조금 다르다. 알라딘이 왕자가 되고 싶었던 이유는 아그라바 국법에 ‘공주는 왕자하고만 결혼할 수 있다.‘라고 써있었기 때문이다. 알라딘은 우연히 만난 자스민에게 다가가고 싶었지만 좀도둑이라는 비루한 신분 때문에 사랑은 커녕 대화조차 나눌 수 없었다. 즉 사랑에 걸림돌이 되는 신분을 극복하고자 한 소원이었다. 이 또한 건전한 욕망이라고 볼 수는 없다. 신분에 대한 열등감을 소원으로 해결하고자 한 것이다. 건전하지 않더라도 자파의 욕망과 다르다.
- 물속에서 탈출하게 해달라.
- 이 때 알라딘은 자파에게 수장당해서 이미 기절한 상태였으므로 스스로 소원을 빌 수 없는 상태였다. 그래서 지니가 트릭을 써서 대신 소원을 빌어준다.
- 첫번째 소원은 알라딘의 트릭, 세번째 소원은 지니의 트릭으로 인해서 소모되었다는 점, 그리고 둘 다 위기상황 탈출이었다는 점이 흥미롭다. 왜냐하면 대칭되는 이 두가지 소원은 어찌보면 쓸데없는 소원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 자파는 아그라바의 술탄 다음가는 권력자이며, 기득권이기도 하다. 반면 알라딘은 거리의 좀도둑으로, 하루하루가 힘든 사회 하층민을 대표한다. 자파는 소원을 ‘더 나은 삶’을 갖는데 사용했고, ‘탈출’ 같이 자파 입장에서는 부질없는 것에 사용할 고민조차 하지 않았다. 하지만 알라딘은 소원의 대부분을 ‘생존’에 사용했다는 점이 흥미롭다. 누군가에게 ‘생존’은 자연스럽게 갖고 있는 당연한 것이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겐 소원을 사용해야 할 정도로 간절했다는 것이다.
- 지니를 자유의 몸으로 만들어 달라.
- 나는 이 소원을 비는 장면이 이 영화의 대미이자 모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소원으로 지니뿐 아니라 알라딘까지 두 사람 모두 자유를 얻는다.
- 알라딘은 지니에게 자유를 줌으로써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워졌다.
- 자파를 물리치고 마지막 소원이 남았을 때, 지니는 알라딘에게 ‘다시 왕자로 만들어달라.(실사 영화에서는 공주는 꼭 왕자와 결혼해야 한다는 국법을 삭제해달다.)’ 라고 소원을 빌 것을 권한다. 이는 위에서 내가 ‘자파와 다르긴 하지만, 건강하지 못한 소원’이라고 했던 두번째 소원과 같은 소원이다. 신분에 대한 열등감을 해소하고 사랑을 얻는 것이다. 지니를 포함해서 우리 모두 알라딘이 다시 이 소원을 빈다고 해도 나무랄 명분은 없다. 하지만 알라딘은 지니에게 처음 약속대로 자유를 준다. 이는 지니에 대한 구원이자, 알라딘 자신에게 부여한 그릇된 욕망으로부터의 자유이자 더 나아가 종교적 의미의 구원이기도 하다.

지니의 자유
알라딘이 마지막 소원을 빌기 전 지니는 매우 복합적인 감정을 보이며 이를 표현하는 배우의 연기력도 매우 인상적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면이기도 해서 예전에 디즈니 전시회에 갔을 때 직접 카메라에 담아두기도 했다.
- 행복
- 자파를 물리침
- 슬픔/걱정
- 그럼에도 불구하고 알라딘은 자스민과 이루어 질 수 없다는 것을 앎
- 기쁨
- 마지막 소원을 쓰면 다시 왕자가 되어 알라딘이 자스민과 만날 수 있다는 것을 앎
- 씁쓸함 / 실망 / 걱정
- 이와 동시에, 알라딘이 마지막 소원을 왕자가 되는데 쓸 경우, 자유의 꿈은 사라진다는 것을 깨달음
- 자기 위로
- 자신의 걱정 (알라딘이 마지막 소원을 왕자가 되는데 쓰는 것) 이 현실로 이루어질까봐, (알라딘이 자신의 입으로 그걸 말할까봐) 지니가 당연히 마지막 소원으로 왕자로 만들어주겠다며 억지로 말함.
- 당황
- 예상과 다르게 알라딘이 ‘지니, 내 소원은 너의 자유야. ‘라고 말함. 이 장면에서 지니는 알라딘의 ’ I wish .. ’ 까지만 듣고, 왕자로 만드는 마법을 부리다가 당황해서 마법을 멈춤. 지니가 자유의 몸이 되는 것을 완전히 포기하고 단념했다는 것을 보여줌.
- 감동
- 램프로부터 자유로워지자 무슨일이 일어났는지 몰라 당황하다가 자유가 된 걸 깨닫고 알라딘을 와락 끌어안음.
- 기쁨/환희
- 수천년동안 염원하던 자유의 몸을 얻자 그동안 해보고 싶던 것( 세계여행을 떠날 채비 )를 곧바로 함.
- 다시 걱정, 슬픔
- 하지만 이로 인해 알라딘은 자스민과의 사랑을 포기했다는 걸 깨달음. 자신의 기쁨이 너무 앞선 나머지 알라딘의 사정을 뒤늦게 이해함.
그리고 아그라바의 국법을 삭제(자스민이 술탄이 됨)인 만화적 허용 및 극적인 연출로 이 모든 갈등은 해소된다. 하지만 [행복->슬픔->기쁨->실망->위안->당황->감동->환희->슬픔] 으로 이어지는 이 감정선을 30초도 안되는 러닝타임에 표출한 배우의 연기력은 실로 경이롭기까지 하다.
[행복 → 슬픔 → 걱정 → 씁쓸함 → 실망 → 자기위로 → 당황 → 감동 → 해방감 → 다시 걱정] 이 섞인 감정선을 표현하는데, 이를 염두에 두고 이 장면을 다시 본다면 배우의 연기력에 감탄할 수 밖에없다. 원작 로빈 윌리엄스의 성우 연기, 그리고 실사판 윌 스미스의 연기 모두 훌륭하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로빈 윌리엄스의 연기를 더 좋아한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면이기도 해서 예전에 디즈니 전시회에 갔을 때 직접 카메라에 담아두기도 했다.
앞에서 말했듯 알라딘은 지니에게 마지막 소원은 지니를 위해서 쓰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지니는 이 말을 완전히 믿지 않았지만, 어쩌면 알라딘이라면 나를 위해 소원을 써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품었다.하지만 지니는 마지막에 이르러서 소원을 전부 사용하고도 남은 것이 아무것도 없는 알라딘의 사정을 이해하고, 리고 알라딘이 처음부터 원했던 단 하나, 자스민과의 사랑조차 이루지 못했다는 것에 연민을 느꼈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내심 기대했던 자신의 꿈인 자유를 이번에도 얻을 수 없으리라 짐작했을 것이다. 조금이나마 희망을 가졌던 자신을 원망하며 다시는 그 누구도 믿지 않으리라 다짐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지니는 사람에게 자주 상처받은 사람들의 전형적인 방어기제를 보인다. 애써 웃음을 지으며, 알라딘이 묻지도 않았는데 억지텐션으로 “이제 왕자가 되는데 마지막 소원을 쓸거지? 지금 바로 왕자로 만들어 줄게” 라며 선수를 친다. 처음부터 믿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이 믿었던 사람에게 우선순위에서 밀려나 버림받는 것보다는 덜 상처받기 때문이다.
지니에게 자유는 무엇이었는지 생각해본다. ‘너라면 무슨 소원을 빌고 싶어?‘라고 묻는 알라딘에게 지니는 ‘자유를 얻고 싶어’라고 답한다. 그리고 짤막하게 덧붙인다. ‘그저, 평범한 인간이 되고 싶어.‘라고. 많은 부와 권력을 얻은 자파가 마지막 소원으로 원했던 그 힘을, 지니는 이미 갖고 있었다. 하지만 지니는 자유를 원하며 ‘인간이 되고 싶어.‘라고 말한다. 이런 역설은 자유가 곧 인간의 고유성 그 자체임을 말한다. 도스토예프스키는 그의 걸작 [카마라조프가의 형제들]에서 ‘자유는 감당하기 힘든 것이며 고통을 낳는다.‘라고 말했다. 일반적인 생각과 다르게 자유는 고통스러운 것이다. 하지만 그 고통과 책힘 또한 인간다움 그 자체라는 말이다. 자파는 인간으로서 더 나은 삶을 원했지만 욕망을 맹목적으로 좇다가 가장 인간다운 자유 그 자체를 잃는다.
조금 사족을 달자면, 이를 연기한 배우 로빈 윌리엄스의 삶을 살펴보면 더 애잔하다. 그는 말년에 알콜중독과 우울증으로 힘들어하다가 스스로 생을 마감한다. 그가 연기하고 남긴 유명한 작품은 많지만, 아카데미에서는 그의 수많은 작품들 중 하나 (그리고 어쩌면 많은 사람들이 로빈 윌리엄스가 연기했다고 알지 못할 정도로 임팩트는 상대적으로 약한,) 지니를 향한 대사를 트윗으로 남기며 그를 애도했다. ‘Genie, you’re free.’

그리고, 자스민
자스민은 지니에게 소원을 빌지 않지만, 자스민도 이 영화에서 자유를 추구한다. 자스민에게 자유는 답답한 성을 벗어나 시장을 거닐며 세상을 경험하는 것이다. 수록곡 ‘A Whole New World’의 가사가 자스민의 욕망이며, 그걸 제대로 해소시켜준 알라딘에게 빠지게 된다. (하늘을 나는 양탄자를 쓴 건 좀 반칙인 것 같아서 살짝 열받았지만 만화영화니까 그냥 참고 넘어갔다. 현 시대로 치면 슈퍼카를 타고 ‘야 타’ 한 것 쯤 되려나. 농담이다. ), 한국엔 이를 오마주한 ‘매직 카펫 라이드’라는 노래가 있다. ‘신도림역에서 스트립쇼를’같은 파격적인 가사를 2000년대 초반에 방송에서 사용하고, 해방과 자유를 상징하는 락 음악을 하며, 당시 락 음악계에서 이례적인 여성보컬을 앞세운 자우림이 이를 오마주 한 것도 자스민의 자유와 욕망, 그 해소를 표현한 거라고 생각한다.
자스민 캐릭터는 실사화를 하면서 좀 더 다채로워졌다. 디즈니에서 실사화를 하면서 유일하게 원작에 없던 단독 OST ‘Speechless’가 추가된것이 흥미로운 점이다. 수동적으로 성 밖에 나가고 싶다는 욕망을 넘어서, 적극적으로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싶다는 현대적 여성상으로 진화했다. 그리고 마지막 알라딘과 사랑을 이루는 과정도 원작 애니메이션에서는 ‘공주는 왕자와 결혼해야 한다.‘라는 법을 삭제하는 것이 아니라, 자스민 스스로 술탄이 되어서 알라딘과 결혼해버리는 파격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최근 디즈니가 별다른 맥락 없이 주인공의 인종을 바꾸거나 원작 내용을 각색하면서 관객들의 외면을 받는데, 이런 식의 각색은 극의 재미도 해치지 않으면서 그들이 현대적으로 재해석 하고 싶은 맥락도 충분히 전달되기 때문에 언제나 환영이다.
So What?
오케스트라 공연을 보고 만화영화를 떠올린다. 그리고 한낱 만화영화를 보고 철학을 깊이 있게 탐구해본다. 예술은 전달하는 매체가 유치하거나 단순한 것을 떠나서 한 사람에게 매우 압축적인, 밀도 높은 인풋을 집어 넣는다. 그 인풋을 받아들이는 그릇이 어린아이라면 딱 그 얕은 깊이만큼의 교훈을, 다채롭고 깊은 경험을 한 사람이라면 또 다른 감동과 메시지를 얻는다. 그것이 인간사에 어떠한 형태로든 늘 존재해왔던 예술이 가진 불변의 가치이기도 하다.
우리는 입버릇처럼 자유를 원하고 자유가 없을 때 가장 고통스러워한다. 개인적으로 군 복무가 고통스러웠던 이유는 힘든 훈련 때문이 아니라 자유 중에서 가장 기본적인 자유인 신체의 자유를 의무적으로 박탈당하기 때문이었다. 신체적 자유가 보장된 사회에서는 보통 그 자유를 경제적 자유로 말하기도 한다. 스타트업을 하는 사람에게는 엑싯을 하는게 그 자유를 얻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걸 한참 초월에서 이룩한 사람들은 또 다른 자유를 원한다. 빌게이츠는 지구를 걱정하고 교육 재단을 만들며, 일론 머스크는 미친 사람 처럼 화성에 가고 싶다고 말한다. 이 말인 즉, 단순한 물질적 자유만으로는 궁극적 자유를 충족할 수 없다는 말이다. 자유를 추구하는 것 그 자체가 가장 인간다운 모습이라는 것이기도 하다. 그 자유가 무엇인지는 자파, 알라딘, 지니, 자스민 처럼 각자의 상황마다 다르지만, 어떤 자유를 추구할지, 어떤 자유를 추구해야 하는 상황에 자신을 가져다 놓을지는 노력으로 선택할 수 있다.
알라딘에게 자유를 준 건 마지막 네번째 소원이었다는 것을 떠올리자. 그리고 그 네번째 소원은 알라딘의 노력과 능력(재치)로 얻어낸 보너스 소원이었다는 점도 기억하자. 대부분의 사람에겐 램프를 갖는 행운이 주어지지 않는다. 그리고 운 좋게 램프를 얻더라도 네번째 소원은 없다. 로또 복권에 당첨 된 사람을 10년 후에 찾아가 봤더니 다시 궁핍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는 여느 식상한 뉴스처럼, 램프라는 행운만으로는 자유를 얻기 힘들다. 우리는 행운이 왔을 때, 네번째 소원을 만들어 낼 자신이 있는가? 지니는 예고 없이 찾아온다. 그러니 항상 준비된 사람만이 네번째 소원을 만들며 주인공이 될 수 있는 것이다.
‘Last wish, I wish for your freed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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