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감상
한 줄 요약 이민자 사회에서 정체성을 찾아가는 이민 2세의 이야기를 원소라는 메타포로 풀어낸 픽사 애니메이션.
영화 중반부터 이 영화가 이민자와 이민자 2세가 이민자 사회에서 가지는 정체성에 대한 이야기로 느껴졌다. 영화 미나리를 보면서 느꼈던 생각들을 다시금 떠올리게 되었다.
| 원소 | 대입 |
|---|---|
| 엘리멘트 시티 | 미국 |
| 불 | 동양인 |
| 물 | 백인 |
| 바람 | 아프리카계 흑인 |
| 나무 | 멕시칸, 라틴, 아메리카 원주민 등 |
원소들이 모여 있는 엘리멘트 시티는 마치 미국 사회를 보는 것 같다. 문화적으로 굉장히 발전한 도시이며 겉으로는 다양한 원소들이 어울려 있는 거대한 멜팅팟이다. 하지만 이 사회에서 주류를 이루는 원소는 따로 있다. 바로 ‘물’이다.
대도시의 거대한 인프라는 대부분 물 중심으로 설계되어 있다. 물을 흩뿌리며 지나가는 기차, 도시 곳곳을 연결하고 있는 수도관 등이 대표적이다. 물은 이 인프라를 이용하는데 아무 불편함이 없으며, 오히려 수도관을 타고 이동하는 등 모종의 혜택을 누리기도 한다. 바람은 태생적으로 자유롭게 날아다닐 수 있는 우월한 신체능력으로 프로 스포츠 선수를 하기도 한다. 미국 사회에서 성공한 흑인들이 대부분 월스트리트의 증권맨이 아니라 스포츠 선수, 뮤지션임을 떠올리게 한다.
반면에 불은 엘리멘트 시티에 쉽게 융화되지 못한다. 한 발 늦게 들어온 이민자들이기에 이방인으로 취급되며 핍박받는다. 이상하게 들리는 ‘불 언어’를 쓰고, 문화에 익숙하지 못하여 종종 주변 물건들을 태우기도 한다. 도시의 인프라도 불 원소들에게 너무 불친절하다. 기차를 탈 때도 물에 젖지 않기 위해 늘 우산을 쓰고 다녀야 하고, 수도관이라도 터지는 날이면 살기 위해 높은 곳으로 도망쳐야만 한다.
앰버의 아버지 — 1세대 이민자
앰버의 아버지는 1세대 이민자다. 기회를 찾아 엘리멘트 시티에 왔고, 근본적으로 정체성은 자신의 고향 파이어랜드에 있다. 불은 불끼리 어울려야 한다고 생각하고, 무시받았던 기억으로 인해 다른 원소들이 상종 못할 종족들이라 생각한다. 평생을 불 원소들에게 유용한 물건들을 파는 상점을 운영하며 불 원소들이 모여 사는 작은 마을에 자리를 잡았다. 한인 이민자 1세대들이 주유소, 슈퍼마켓 등을 운영하며 한인타운을 중심으로 살았던 것을 떠올리게 한다.
앰버 — 2세대 이민자의 정체성
앰버는 엘리멘트 시티에서 태어났다. 자신의 정체성을 가족들로부터 주입받았지만 성인이 되면서 그것이 부자연스럽다고 느낀다. 심지어는 아버지가 절대 어울리지 말라던 물 원소 남자와 사랑에 빠진다.
영화 중반, 웨이드의 가족과 식사 자리에서 웨이드의 어머니가 묻는다.
“너는 어떻게 불인데 물 언어를 이렇게 자연스럽게 잘하니?”
앰버의 대답.
“그야 저는 여기서 태어나고 자랐으니까요.”
아버지가 주입한 정체성은 ‘파이어랜드에서 온 불 원소’이지만, 앰버 스스로가 느끼는 정체성은 그냥 한 명의 엘리멘트 시티 시민이다. 이 간극이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갈등이다.
웨이드 — 메인스트림의 철없는 선의
웨이드는 유복한 메인스트림 환경에서 별 걱정 없이 살아온, 철없지만 심성은 착한 캐릭터다. 처음 만남에서 앰버의 가게에 폐업 신고 처분을 내리는 데 거침이 없다. 앰버의 읍소에도 뒤도 돌아보지 않는다. 마치 공정함을 부르짖는 자유시장경제를 대변하는 듯하다.
앰버가 아버지 가게의 폐업 위기로 무너지고 있을 때 웨이드가 건네는 위로는 이것이다.
“그래도 좋아하는 일이 있으면 그냥 하고 싶은 대로 해.”
좋은 말이지만, 앰버는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게 옳다는 걸 몰라서 못하는 게 아니다. 앰버의 환경을 경험해 본 적도, 앞으로 경험해 볼 일도 없는 웨이드는 앰버가 진짜 무엇 때문에 고통스러운지 이해하지 못한다. (문득, 영화 “화차”의 마지막 장면도 떠오른다. 이선균은 사채업자에게 쫓겨 신분을 훔쳐서 사는 김민희에게 이렇게 말한다. “그래 떠나, 근데! 그냥 너 이름으로 살아.” 자기이름으로 살고싶어서 평생 발버둥쳤는데도 자기 이름으로 살 수 없던 그녀에게 이 무책임한 조언은 어떻게 들렸을까.)
여느 픽사 애니메이션이 그렇듯 영화는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어렸을 때는 귀엽고 예쁜 캐릭터들이 우여곡절 끝에 행복하게 사는 1차원적인 이야기로 받아들였다. 나이를 먹으면서 뒤에 전달하고자 하는 이면의 이야기도 보이기 시작했다.
픽사 애니메이션이 훌륭한 이유는 보는 사람에 따라 다양한 재미를 느낄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어린아이들에게는 아름다운 그림과 행복한 동화를, 어른들에겐 생각할 거리와 여운을 가져다 준다. 이런 게 진짜 예술 작품 아닐까.
🎵 Steal The Show — Lau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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