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다. 흔히 개발자라고 부르는 사람이다.
내가 가진 가장 큰 재주는 소프트웨어에 ‘기능’을 만드는 일이다. 로그인, 메시지 보내기, 주문과 결제, 배송 조회처럼 우리가 매일 앱을 쓰며 누르는 그 모든 동작들. 화면 너머에서 그것들이 의미 있게 작동하도록 만드는 것이 내 일이었고, 나는 그 일로 먹고살아 왔다.
그런데 요즘 이런 의문이 든다. 기능을 만드는 일은 앞으로도 가치가 있을까.
기능을 만드는 비용이 0에 가까워지고 있다. 예전 같으면 팀이 몇 주를 붙어 만들던 것을 이제는 AI와 함께 며칠, 때로는 몇 시간 만에 만든다. 개발을 배운 적 없는 사람도 그럴듯한 앱을 하나 뚝딱 만들어낸다.
물론 아직 AI가 잘 만들지 못하는 기능도 있고, 전문 지식 없이는 AI가 있어도 만들 수 없는 고급 기능도 있다. 하지만 우리가 매일 쓰는 서비스의 대부분은 그 정도의 기능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비용이 낮아지자 세상은 앱으로 넘쳐나기 시작했다. 그중 상당수는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 모르겠는, 화려한 기능만 뽐내는 앱들이다. 만들 수 있으니까 만들어진 것들. 기능이 귀하던 시절과 비교해보면 낯설게 느껴진다.
그렇다면 기능이 흔해진 시대에 무엇이 남았을까.
내게 충분한 시간과 자원이 주어진다면, 카카오톡의 메시지 기능이나 배달의민족의 주문 기능은 만들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친구가 한 명도 없는 카카오톡에 메시지 기능이 무슨 소용일까. 음식점이 하나도 없는 배달의민족은 무슨 쓸모가 있을까. 결국 남는 건 사람들, 그 사람들이 이미 거기 모여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들이 믿고 찾아오는 이름이다. 브랜드, 마케팅, 사용자. 기능이 아닌 것들이다.
그러다 보면 조금 불편한 질문도 떠오른다. 형체 없는 소프트웨어의 기능이란 결국 0과 1의 무수한 조합일 뿐이다. 그동안 우리가 받아온 대가는 정말 그 조합을 만드는 능력에 대한 것이었을까. 아니면 아무나 그 조합을 만들 수 없었던 진입장벽 덕분이었을까. 장벽이 낮아지고 나서야 그 민낯이 보이기 시작한 건 아닐까.
뜬금없지만 시계 이야기를 조금 해보고 싶다.
나는 기계식 시계를 좋아한다. 그리고 시계의 역사, 특히 시계공이라는 직업이 걸어온 길을 보면 지금의 개발자가 겹쳐 보인다.
오랫동안 정확한 시간을 안다는 것은 일종의 권력이었다. 전기도 배터리도 없이, 오직 태엽과 톱니바퀴의 물리적인 힘만으로 1초를 정확하게 세어야 했다. 18세기 바다 위에서는 정확한 시계가 배의 위치를 알아내는 열쇠였고, 그것은 곧 선원들의 생사를 가르는 문제였다. 시간이 흘러 그 기술은 손목 위로 올라왔다. 손목에 올릴 만큼 작은 공간에 수백 개의 부품을 맞물리게 놓는 일은 그야말로 초정밀 기술의 집약이었다.
시계공은 세상에 꼭 필요한 기술자였다. 그리고 그들의 기술이 만들어내는 것은 하루에 1초라도 더 정확하게 시간을 재는 일, 말하자면 시계의 ‘기능’이었다.
1960년대, 일본의 세이코가 수정 진동자로 움직이는 쿼츠 손목시계를 내놓는다. 배터리로 움직이는 이 시계는 기계식 시계보다 훨씬 정확했고, 단순한 구조 덕에 머지않아 몇 만원으로도 정확한 시계를 살 수 있게되었다. 세이코와 카시오 같은 회사들을 중심으로 쿼츠 시계가 세상을 뒤덮었고, 수백 년 동안 정밀함으로 세계를 지배하던 스위스 시계 산업은 초토화되었다. 수많은 공방이 문을 닫았고, 수많은 시계공이 일자리를 잃었다. 사람들은 이 사건을 ‘쿼츠 파동’이라고 부른다.
이 구도에서 지금 개발자가 처한 상황이 떠오른다. 시계공은 개발자, 쿼츠는 AI, 1초를 더 정확하게 재는 기술은 소프트웨어의 기능에 해당한다.
쿼츠 파동 이후에도 기계식 시계를 만드는 사람들은 여전히 있다. 숫자는 줄었지만 사라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들이 하는 일은 파동 이전과 같은 일일까.
이제는 휴대폰만 열면 누구나 오차 없는 시간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런 세상에서 기계식 시계의 하루 오차를 2초, 3초 줄이는 일에 예전과 같은 의미가 있을까. 지금 비싼 기계식 시계를 사는 사람 중에 정확한 시간이 필요해서 사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시간을 아는 일은 여전히 중요하다. 다만 더 이상 시계공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닐 뿐이다.
물론 기계식 시계의 ‘기능’이 완전히 쓸모를 잃은 것은 아니다. 전기가 끊기거나 전자 장비를 믿을 수 없는 환경에서는 태엽만으로 움직이는 시계가 여전히 마지막 보루가 된다. 1970년 아폴로 13호가 사고로 전력을 아껴야 했을 때, 우주비행사들은 손목 위의 기계식 크로노그래프로 엔진 분사 시간을 쟀다.
소프트웨어도 마찬가지다. AI가 쉽게 흉내 내지 못하는 극한의 성능 최적화나, 작은 실수 하나가 큰 피해로 이어지는 보안 같은 영역에서는 기능을 만드는 기술이 여전히 그 자체로 가치를 가진다. 하지만 우리가 매일 쓰는 소프트웨어, 특히 대기업이 아닌 스타트업의 소프트웨어 대부분은 그 정도의 품질을 요구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사람에게 우주에서 버티는 시계가 필요 없는 것처럼.
그러니 달라진 건 기능의 가치 자체라기보다 기능이 필요한 자리의 크기다. 예전에는 모든 시계가 시계공의 정밀함을 필요로 했지만, 이제는 아주 좁은 자리만이 그것을 필요로 한다. 그 자리 밖에서 기능은 더 이상 그것을 만드는 사람의 존재 이유가 되어주지 못한다.
그래서 살아남은 시계공들의 일은 다른 속성의 일이 되었다. 누군가는 장인정신과 유산을 팔고, 누군가는 손목 위의 예술 작품을 만든다. 그리고 그 시계들은 아이러니하게도 더 정확한 기능을 가진 쿼츠시계보다 수백배의 가격에 거래된다. 다른 흥미로운 점은 스위스가 반격에 나설 때 꺼내 든 카드 중 하나가 스와치였다는 점이다. 스와치는 스위스가 만든 쿼츠 시계였다. 자신들을 무너뜨린 기술을 받아들여 다시 일어선 것이다.
그렇다면 살아남은 시계공들은 기능을 가장 잘 다루던 사람들이었을까. 어쩌면 아닐지도 모른다. 쿼츠 파동 속에서 자신이 하는 일이 무엇인지를 다시 정의한 사람들, 시대가 바뀌었다는 걸 먼저 받아들인 사람들이 아니었을까.
나는 앞으로 개발자 생태계는 어떻게 바뀔지, 나는 그 속에서 어떻게 살아가야하는지 아직 나는 잘 모르겠다
내가 아는 건 이 정도다. 1초를 더 정확하게 재는 능력만으로 존재 이유를 설명하던 시대는 시계공에게서 끝났고, 기능을 만드는 능력만으로 존재 이유를 설명하던 시대도 개발자에게서 끝나가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시대를 건너간 시계공들은 기술을 버린 사람들이 아니라, 그 기술로 무엇을 할 것인지를 다시 물은 사람들이었다는 것.
쿼츠 파동 한가운데 있던 시계공들도 답을 미리 알고 움직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나도 그 질문을 붙들고 있다. 내가 만드는 기능이 더 이상 이전처럼 귀하지 않은 세상에서, 나는 무엇을 만드는 사람이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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